Saturday 31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9)

유럽생활 넷째날(2) - 에스페란토 박물관, 지구본 박물관, 음악의 집(Haus der 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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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uton! Mi estas Sofia, kaj mi logxas en Koreio. Mi estas 29-jara virino. Mi studas Esperanto en lernu.net. Esperanto estas tre interesa lingvo, mi pensas. Mi estas komencanto de Esperanto, sed mi volas studi gxin dauxre. Dankon amiko! Gxis!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위에 쓴 저 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프라인 인맥 중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온라인 인맥 중에는 아주 가끔 한명씩 나올까 싶다. 전세계 2백만명이 쓴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도 나이도 인종도 초월한 세계어 에스페란토. 인공어 중에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이 언어를 내가 저렇게 쓰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관심은 있었다. 트친 중에서 에스페란토에 굉장히 관심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의 블로그를 보면서 뭔가 신기해보였던 건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이걸 쓰는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쓸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배우진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을 바꿔놓은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전시실 중 하나인 에스페란토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U3 헤렝가세 역 근처에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며칠 전 노이에부르크에 갔다가 우반 타러 내려갔던 그 골목 바로 옆이었다. 아, 정말 슈테판플라츠 근처는 벗어날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 전에, State Hall을 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배꼽시계를 무시때리기 미안하여 밥을 먹으러 슈테판플라츠 근처를 돌고 돌고 돌아야 했다. 왜냐. 하필 그 때가 온갖 성당의 미사가 다 끝나는 시간이라 내가 State Hall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개미새끼 하나 없어보....이진 않았지만! 아무튼 사람 별로 없던 그곳 일대가 사람들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식점은 안그렇겠는가 ㅡㅡ;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거리를 헤매다가 거의 지쳐서 들어간 한 음식점. 가게 점원들이 대부분 분홍빛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양 많아보이는 걸로 시켰다. 그리고 좀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점원분께서 음식을 가져다 주셨다. 그리고 나는 우아하게 칼로 음식을 썰어서 입에 넣었는데!!

삶은 시금치를 모짜렐라 치즈에 버무린 그 맛을 아십니꽈.

진짜 느끼해서 한 입을 먹자마자 바로 입맛 실종. 내 미각을 돌리도 엉엉. 하지만 이왕 주문하기도 했고,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의 여정이 굉장히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진짜 억지로 먹어댔지만, 결국 끝까진 먹지 못했다. 이때의 후유증이 남았는지, 얼마 전 학교 앞에서 바질잎이 박힌 피자를 먹었는데 그때 생각나서 토할 뻔했다 ㅡㅡ;

여튼 그렇게 배를 채우고 들어간 박물관, 갑자기 눈이 즐거워졌고 머릿속에 상투스가 샤아~ 하고 울려퍼졌으니! 내가 들어가 본 모든 건물 중에서 티켓 파시는 분이 제일 훈남이시다! 훈남을 보면 눈이 즐거워지는 것은 여성의 본능일지니. 후훗. 눈의 즐거워짐을 몸소 느끼며 티켓을 사는데, 들어올 때부터 지구본 박물관이 눈에 띄길래 일단 그 곳 표부터 사고 물어봤다. 혹시 에스페란토 박물관이 어디냐고. 그러자 직원분이 내 바로 뒤를 가리킨다. 아, 표시가 작아서 못알아봤다. ㅡㅡ; 그래서 에스페란토 박물관 표도 사고 싶다고 하니까 그분이 이러신다.

"에스페란토 박물관과 지구본 박물관 콤보 티켓이 있습니다. 합해서 6유로고요, 지금 지구본 박물관 하나만 5유로 계산하셨으니까, 1유로만 더 주시면 콤보 티켓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님, 앞뒤 따질 것도 없이 콤보 티켓을 받고 에스페란토 박물관으로 향했더랬다. 아, 마지막에 Thank you.라고 말하자 Welcome.이라고 답하던 그 직원분의 훈남미소,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 남친에게 이런 미소를 기대.........하지 말자 이놈아. ㅡㅡ; 내 남친은 더 훈남이니까(라고 쓰고 뒷수습 쩐다고 읽는다)

아무튼 그렇게 들어간 에스페란토 박물관. 그곳은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에스페란토를 만든 자멘호프의 사진부터 에스페란토 대회 사진과 에스페란토 관련 물품들, 에스페란토로 쓰여진 글과 노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에스페란토 학습 프로그램인 kurso를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었다. 또한 이곳에선 다른 인공어들도 체험해볼 수 있었는데, 클링온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 햄릿의 그 유명한 'To be or not to be' 이걸 클링온으로 들으니 갑자기 무슨 42세기 뭐 그런 곳으로 날아간 느낌이야! ㅋㅋㅋ

여튼 그 작은 공간을 둘러본 뒤 위층의 지구본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지구본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들어가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지구본의 크기가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심지어 새끼손가락보다 지름이 더 작은 지구본도 있었다. 그리고 앞의 State Hall에서 보았던 Vincenzo Corinelli를 이 곳에서 더 만날 수 있었고, 예전에 과학 시간에 천체의 움직임을 공부할 때 쓰던 기계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이전의 지도를 디지털화해서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장치도 있었는데, 동양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같은 지도 내에서 서양과 동양의 정확도가 많이 차이나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이 박물관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지구본에 비추는 조명 아래에서 키스를 하고 있던 커플이었다. 이봐, 여기 박물관이라고! ㅠㅠ 사실 부럽다고! 으헝헝 ㅠㅠ

여튼 녹초가 되다시피 한 이 내몸을 어이할거나. 지구본 박물관에선 진짜 의자만 보이면 앉아서 쉬었다 ㅡㅡ; 그때 박물관에 오셨던 분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의 정신줄 놓은 모습으로 안구 테러를 당하신 것에 심심한 위로따윈 없다. ㅡㅡㅋㅋㅋ 뭐 나는 지구본도 지구본이지만, 이 건물엔 쉬러 들어온 거나 다름없었으니, 빈을 떠나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넘어가기 전에 사진이 빠지면 섭하다! 여기까지의 여정을 한번 되짚어보며, 늘 그랬듯이 섬네일을 클릭하시라!

자 이제 음악을 큰 틀로 잡은 이 여행에서 가보고 싶었던 또 한 곳을 찾아 캐른트너 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낮에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그 곳 표지판을 본 적이 있어서 다시 오페라하우스 앞까지 일단 가보자 싶어 또 열심히 걸어갔다. 하지만 그곳엔 낮에 본 표지판은 없었다 ㅠㅠ 그래서 그동안 아끼고 아꼈던 넥원이의 구글맵을 열어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분명 그 가까이에 있었지만 내 눈엔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번이나 길을 물어서야 찾아갈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정말 그 근처에서 뺑뺑이를 돌면서 헤매고 있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 내게 길을 가르쳐 준 두번째 분(사실 첫번째 분은 길을 모르셨음 ㅡㅡ;)은 근처 한 가게 앞에서 완전 카리스마 쩌는 모습으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처음엔 무서워서 다른 분께 물어보려다 그 골목에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이길래 걍 물어봤더랬다. ㅡㅡ; 레알 무서웠심ㅡㅡ;

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곳은 음악의 집(Haus der Musik, 하우스 데어 무지크)이다. 이전에 보았던 예술사박물관의 고음악 전시실이 말 그대로 박물관 전시실이라면, 이곳은 음악 체험관에 가까운 곳이다. 음악을 그저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리 파형을 볼 수도 있고, 단순히 악보만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직접 그 곡을 들어볼 수도 있고, 그저 음악만이 아니라 소리 그 자체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혼자서 둘러볼 만한 곳은 아니었고, 오히려 가족들이 함께 와서 음악을 '가지고 노는' 곳이라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내가 갔을 때도 혼자서 둘러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다들 가족 단위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어떤 곳인지는 섬네일 클릭 ㅋ

5층까지 죽어라 걸어올라갔다가 맨 위층의 음반가게를 지나 쭉 내려오니 어느새 밤이다. 잠시 길치모드가 발동되어 일단 큰길로 나가자 생각하고 사람 많은 곳을 찾아 가니 어느새 슈테판 성당 근처 ㅋ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걷는데, 내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 사진이다.

ⓒ syn.sophia
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나는 건물 속에 갇혀 있는 음악이 아니라 거리에서 살아있는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고음악 전시실에서 우연히 들었던 성악곡처럼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캐른트너 거리 중간에서 펼쳐진 작은 음악회, 이제 과거의 음악의 도시가 아닌 현재의 음악의 도시 빈을 바라보라는 그런 뜻이었을까. 그렇게 한참 음악을 듣다가 발길을 돌려 우반 역으로 향했다.

이후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역시 또 돌아다니다 바게트 빵으로 만든 핫도그를 사서 먹었는데 빵이 좀 딱딱한 거 말고는 정말 맛있었다. 이후 나는 유럽에서 어딜 가든 근사한 식당에선 절대 밥을 먹지 않았고 대부분의 식사를 빵으로 해결했다. 그 덕이었을까, 3주가 지난 뒤 몸무게를 재어 보니 2kg가 줄어 있었다. ㅋㅋㅋ

아무튼 빈에서의 마지막 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며 끝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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