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1 October 2011

소피아의 우분투 입문기

△ 우분투 4.10 로그인 화면 (from OMG! Ubuntu)


지금으로부터 7년전 10월 20일, 우분투 4.10이 처음 모습을 내밀었단다. 나는 몰랐는데, OMG Ubuntu에 관련글이 올라와서 알게 되었다. 여튼 우분투의 7번째 생일을 보내며(사실 우리나라 시각으론 어제와 오늘에 딱 걸리는 그 순간이었겠지만) 나와 우분투의 입문기인지 동거기인지 모를 무언가를 한번 풀어보려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 여름 어드매. 당시에도 지금처럼 SNS에 미쳐있었던 나는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내 친구가 적어놓은 세 글자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우분투'. 그 순간 나는 '리눅스'라는 세 글자를 반사적으로 떠올렸다. 도대체 어디서 '우분투 리눅스'라는 이름을 본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호기심 강하고 삽질 좋아하는 성격인 나는 그 순간 바로 우분투 10.04 LTS CD 이미지를 다운받았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구글신께 도움을 요청하여 VirtualBox(이하 버박)라는 녀석을 알게 되었고, 역시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 요녀석을 노트북(Windows Vista)에 설치하고 CD 이미지를 넣었지만....반응이 없었다 ㅠㅠ 어찌해야 하나 싶어 다시 구글신께 여쭈어보니 '이전 버전을 설치해보거라'라는 답을 주셨고, 정보의 바다에서 9.10 CD 이미지를 찾아 겨우 버박에 설치하여 우분투와 만나게 되었다.

심상치 않은 첫만남은 그렇게 버박에서 듀얼 부팅으로 이어졌다. 그럴 수 있었던 게, 이미 이전부터 오픈소스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서 노트북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싹다 정품으로 바꿀 생각에 MS Office와 한글 대신 오픈오피스를, 포토샵 대신 김프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무리없이 듀얼부팅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ntfs-3g를 써서 NTFS 파티션에 있는 파일들까지 대부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1주일 정도를 쓰고 나니 잊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Lucid Lynx, 바로 10.04 LTS였다. 그래, 이제는 되겠지 하는 생각에 업데이트 매니저에서 10.04 업데이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터미널에 나오는 작업과정을 지켜보는데, 뭔가 이상한 메시지가 보이는 것이었다. 뭐더라. 지금은 가물가물한데,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였던가. 아마 뭔가를 삭제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뭐 알아서 되겠지 라는 심정에 그냥 내비두고 재부팅이 되는 걸 확인했는데, 검은 화면에 뜨는 한 줄.

grub rescue>>

그때가 아마 새벽 1시쯤이었나 그랬을 거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고, 이제 어떡하나 싶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친오빠가 쓰다가 물려준 노트북인데 나중에 집에 와서 노트북 보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다그칠 게 뻔한데 어쩌냐는 생각부터 이 안에 들어가있는 온갖 자료들은 이제 못보는구나 이런 생각까지. 아 정말 그 순간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9.10 듀얼부팅까지는 잘 되었다가 10.04에서 막힌 걸 생각해내고, 필사적으로 9.10을 설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거실에 XP가 설치된 데스크탑이 한 대 있어서 부모님 몰래 컴퓨터를 켜고 구글신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듀얼 부팅을 위해 만들어둔 9.10 CD는 RW라 이미 포맷되어 다른 녀석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10.04 LTS가 나온지 몇 달 된 상황이라 우분투 홈페이지에서는 9.10 다운로드 링크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신 다행히도 9.10 이미지를 링크해 놓은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고, 바로 이미지를 다운받아 CD로 구운 뒤 노트북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듀얼 부팅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를 굽고 난 다음부터는 쉬웠다. 단지 노트북을 영영 못쓰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이다.

그리고, 2시간의 공포는 사라지고, 새벽 3시쯤 내 노트북은 우분투 9.10의 로그인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난 다시는 비스타를 만날 수 없었다. 온갖 MS 실행파일들도 마찬가지였다. (MS 실행파일들은 이후 Wine을 사용해서 쓰긴 했지만, 하루 정도 쓰고 이상해서 지워버렸다.)

초반에는 비스타를 살리기 위해 온갖 잡다한 걸 다 해보았다. 며칠 동안 구글신에게 '복구 CD를 내놓아주시오'라고 빌었지만, 어째 받는 녀석들마다 버박에서 테스트하면 영 이상했다. 제대로 실행되는 녀석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백업 제대로 해놓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그렇게 나는 노트북을 켤 때마다 비스타 복구CD를 찾았고, 그걸 찾기 위해 파이어폭스를 열었고,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려면 당연히 한글 입력기 설정이 되어 있어야 하고, 거기다 포토샵을 써야 될 상황이라 바로 김프를 열어야 했었고, 단어를 외울 일이 있어 플래시카드 프로그램인 jMemorize를 썼는데 이게 크로스 플랫폼이라 우분투에서도 돌아가는 녀석이었고, 어느날부터 비스타 복구CD를 찾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대신 XP 이미지를 찾아 버박에 깔아버렸고.....

뭐 저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우분투에 익숙해졌다. 이후 9.10을 두달 정도 쓰다가 NTFS 파티션이 나눠져 있는 게 영 불편한데다 딱히 윈도우를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아예 전체 포맷을 해버리고 노트북에 우분투만 단독으로 깔아놨다. 그리고 얼마 뒤 업데이트 매니저에서 LTS로 업데이트하니까 웬걸. 언제 오류났었냐는 듯이 완전 깔끔하게 업데이트되고. 아 그때의 허무함이란. ㅋㅋㅋㅋㅋ

여튼 그리고 지금은 우분투에 오픈박스를 설치해서 대부분의 작업을 터미널로 하고 있으며,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 아치 리눅스로 넘어갈 준비를 이제 막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쉽지않다 ㅡㅡ; 아마 버박에 몇번이나 깔았다 지웠다를 해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ㅠㅠ)

1년 4개월 남짓 우분투를 쓰면서 했던 삽질의 대부분은 터미널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겐 도스 시절의 향수가 있어서 마우스 클릭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터미널을 열어서 한번씩 해보곤 했다. (덕분에 apt-get cp mv mkdir dpkg 등등 아주 기초적인 명령어를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컴퓨터에 대해 완전 무지하다. 가끔 사람들이랑 만나서 컴퓨터 이야기가 나오면 아톰 어쩌구 셀러론 어쩌구 뭐 이런 이야기들 나오는데 사실 하나도 못알아먹는다. 내가 리눅스 쓴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컴퓨터공학 전공인 줄 알았단 사람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분투 리눅스를 쓰기 위해 필요한 건 딱 세 가지다. 일단 한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마우스 클릭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인터넷 사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건 필요없다. 사실 우분투에서 터미널은 복잡한 작업을 간단히 하기 위함이나, 아주 가끔 터미널 명령어로만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함이 아니고서야 거의 쓸 일이 없다.

나는 윈도우나 맥OS가 '나쁜' 혹은 '덜 떨어진' 운영체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그냥 같은 운영체제일 뿐이다. 단지 우리나라의 ActiveX 떡칠이나 hwp 문서 등등 특수한 상황 때문에 윈도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일 수밖에 없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무조건 리눅스, 그중에도 무조건 우분투'를 외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딱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윈도우를 쓰듯이, 맥도 리눅스도 쓸 수 있다고. 거기다 우분투처럼 윈도우 쓰듯이 그냥 쓸 수 있는 리눅스도 있다고. 그러니까 써보지도 않고 '리눅스는 어렵고 불편해서 싫어요'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그건 리눅스가 가진 매력을 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넌 매력없어'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상 우분투의 7번째 생일을 맞이하야, 심심해서 써보는 우분투 입문기....치고는 뭔가 복잡한 글은 여기서 끝 ㅡㅡ)v

Sunday 16 October 2011

[영화잡담]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지금까지 총 몇 편의 영화를 봤는진 사실 모른다. 하지만, 그중에서 10여년이 지나도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는 영화는 이 작품 하나 뿐이다.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소설가 존 그리샴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 하지만 난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이 어땠는진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영화 자체로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겐 충격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일단 영화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미시시피주 켄튼 지역에서 흑인 소녀 토냐가 백인 청년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거의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잡히고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 하지만 이미 비슷한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난 적이 있는 걸 알고 있는 토냐의 아버지 칼 리 헤일리(사무엘 잭슨 분)는 재판 전날 법정에 몰래 숨어 들어가고, 다음날 재판장으로 들어가는 두 범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 일로 칼 리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자신의 동생을 변호했던 백인 변호사 제이크 브리갠스(매튜 맥커너히 분)에게 자신의 변호를 부탁한다.

이후 제이크는 미시시피 법대에 다니는 엘렌 로아크(산드라 블록 분)와 자신의 스승 루션(도널드 서덜랜드 분)의 도움을 받아 칼 리의 변호를 준비한다. 그러나 흑인을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라는 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년 동안 잠잠했던 KKK단의 공격을 받아 자신의 집이 불탄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협박과 폭행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칼 리의 변호를 맡아 무죄판결을 이끌어낸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법정 영화에다 인종차별의 코드를 집어넣은 영화다. 10여년 전에 내가 느꼈던 것도 딱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내가 놓친 것이 보였다. 그건 바로 '사람의 이중성'이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를 보자. 그는 흑인과 백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도 칼 리를 '친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 재판 바로 직전 새벽에 칼 리는 제이크의 그런 모습이 위선이었음을 말해준다. 자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제이크에게 '당신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 당신은 내가 어디 사는지 모르지. 우리 아이들은 함께 놀 수가 없어.'라고 말하면서.

에이지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NACCP에서 처음 기금 이야기를 할 때는 기금을 모으기 힘들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수고비를 주겠다는 말에 반색을 하며 기금을 모은다. 그것도 거짓말을 해서. 이것 역시 칼 리가 부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은 바였고, 그는 자신이 들은 것을 에이지 목사에게 그대로 말한다. '기금을 모으실 때 제 변호기금이 아니라 제 가족들이 굶어 죽을 상황이라 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라는 한 마디로.

NAACP는 어떤가. 그들은 칼 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 했다. 그래서 칼 리에게 제이크 대신 자신들의 변호인단을 선택하라고 했다. 기금도 이미 다 모은 상태였다. 하지만 칼 리는 거절했다. 대신 제이크를 선택했다. 나중에서야 나오지만 그 이유는 제이크가 백인이기 때문에 백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변호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칼 리를 돕겠다는 이들이 칼 리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NAACP를 제외한 두 사람의 변화도 보여준다(NAACP 관계자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에이지 목사는 법정 앞에서 흑인들과 함께 칼 리의 무죄를 주장하고(물론 이것을 변화라고 보는 건 비약일 수도 있다), 제이크는 당연히 패소한다고 생각한 평결을 최후 변론으로 뒤집은 뒤, 칼 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사회정책분야에 관심이 많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칼 리의 그 눈빛, 제이크와 에이지 목사를 보며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비판하는 그 눈빛 앞에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나도 결국은 그들과 같이 이중적이며 모순덩어리일 뿐이었으니까. 나도 결국은 그들을 나의 잣대로 마음대로 판단하고 비난하는 부류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 영화가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나 역시 제이크와 에이지 목사처럼, 칼 리의 그 눈빛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물론 내 안의 모순을 깨는 게 쉽지 않은 걸 알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발견한 게 있는데, 내용과는 관련없는 부분이라 이렇게 따로 쓴다.

하나. 서덜랜드 부자가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같은 편이 아니다. 아버지인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는 제이크의 스승인 루션 역으로, 아들인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는 성폭행범의 동생이자 KKK단의 일원인 프레디 역으로 나왔다. 닮은 사람 두 명이 서로 다른 편을 연기하는 걸 보니 좀 이상했다. ㅋㅋ

둘. 이 영화에서 제이크 역을 맡은 매튜 맥커너히(Matthew McConaughey)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도 변호사 역을 맡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타임 투 킬>에서는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이었던 반면,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는 속물의 성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듯하다.

셋. 이 영화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떼로 나올 줄이야. 위의 세 명과 함께,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 사무엘 잭슨(Samuel Jackson),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까지. 오프닝에 나오는 배우들 이름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O_O

Thursday 6 October 2011

RIP, Steve Jobs.
1955 - 2011
(Photo from Apple.com)

Saturday 1 October 2011

Come back to Blogger.com

그러니까 언제였더라. 아주아주 예전에 블로그스팟에 블로그를 하나 떡하니 만들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디자인이 더 허접해서(!) 이틀인가 하고 때려치웠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구글 블로그에 손을 대지 않겠다! 고 생각했건만. 요렇게 또 글을 남기는구나.

뭐. 구글빠가 어디 가나염. 그리고 테터툴즈 1.x때부터 시작된 블로그 본능도 어디 가나염. 긴글 쓰고 싶은 충동이 구플이나 페북으로 다 채워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염. 긴글 충동이 위키 쓴다고 다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예염 ㅡㅡ; 그리하야 다시 돌고 돌고 돌아 이곳에 정착을 했다는거 ;;

하지만 뭐... 이런저런 사정상 글을 자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뭔가 생각날 때 끄적끄적 한번 적어보겠사와요. 물론 기대는 금물... 이라고 쓰고 나니 별로 기대하는 사람도 없겠구나 싶어서 갑자기 서글퍼지는군. 어흑.

여튼 첫글은 여기까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