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6 November 2011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당신을 기억하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 요정).

오늘, 2011년 11월 6일은 그가 이 땅을 떠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바깥에는 마치 그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나는, 달빛요정님의 전 앨범을 들으면서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를 꺼내보려고 한다.

아쉽게도, 난 단 한번도 그를 만나본 적이 없다. 사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그의 팬(사실 팬이라고 말하기엔, 그의 앨범 전부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전부라서 팬이란 말을 쓰기도 뭐하다) 중의 한 사람이 될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다.

내가 요정님의 팬이 된 것은 2010년 어느 봄날이었다. 당시 딴지일보 독투였나? 아무튼 어딘가에 누군가가 달빛요정님의 3.5집 수록곡인 <나는 개>의 가사를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딱 봐도 이건 MB를 까는 곡이라고 생각한 나는 바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가서 이 곡을 찾아 들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전 앨범을 그 날 전부 들어버렸다.

그런데, 달빛요정이란 저 이름이 뭔가 익숙해서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가입해놓고 잘 들어가지 않던 음악사이트의 회원 이름이었다. 달빛요정.

진짜 우습게도, 난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름을 보면서 '뭐 저런 이름이 다 있나'하고 넘겨버렸다. 우리집 근처까진 아니었지만, 당시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상황이라 어디든 그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다 인디음악을 하는 원맨밴드라니. 당시 내 머릿속에서 이 두 가지는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조합을 만들어 버렸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은 당장 집어치우고 바로 공연장으로 달려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때가 난 너무 후회된다.

여튼 그렇게 요정님을 알게 되었지만, 통장 잔고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라 요정님의 앨범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스트리밍으로 만족하고 있다가, 요정님의 왕팬이었던, 내 트친 중 한분께서 무조건 지르라고 권유하시길래, 일단 요정님 트위터로 앨범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3.5집은 그렇다 쳐도 1집부터 전부를 살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살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질렀다. 아주 과감하게.

며칠 뒤 요정님의 앨범이 내 손에 들어왔다. 부모님께 걸리면 끝장이었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연구실로 주문을 했는데,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바깥에 며칠 동안이나 내놔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더라. 물론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요정님이 직접 포장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CD 포장비닐을 뜯고 CD를 전부 살펴보는데, 깜짝 놀랐다.

6장 모두 요정님의 싸인이 되어 있었다. 3.5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전부다 그랬다. CD 한 장마다, 요정님의 싸인이 되어 있었다. 너무 감동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기에. (지금도 이 CD들은 내 자랑거리 중 하나다.)

그리고 거의 몇 주 동안은 요정님의 음악을 들으면서 지냈다. 감동이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내가 그분의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을까. 왜 인디음악에 대한 편견에 쩔어서 그분의 음악을 무시했을까. 그래서 다짐했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끝나면, 그 때는 어디든 요정님의 공연을 보러 가겠노라고.

하지만 그런 기분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요정님의 음악을 듣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CD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덮어쓰기까지 했다. 거기다 당시 모 아이돌 그룹에 빠져있던 나는 요정님의 음악을 거의 뇌리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

그 무렵이었다. 요정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트윗을 본 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그분의 음악을 등한시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기도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제발 다시 깨어나게 해달라고. 요정님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그저 깨어나길 기도했다. 그래서 얼마 후 조금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소식이 올라왔을 땐, 당연히 요정님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더이상 그분의 공연을 보러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그의 새 앨범을 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분은, 다른 세상에서 더 멋진 음악을 하기 위해, 잠시 우리의 곁을 떠났다. 2010년 11월 6일 오전 8시 13분,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에.

요정님의 발인일,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요정님을 떠올리다가 문득 넘버링 232가 적힌 3.5집 CD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도저히 사라질 것 같지 않은 담배 냄새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분이 가신 게 실감나면서, 이제 9회말 주자 만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당신이 아닌 내가 타석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글을 쓰면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난 여전히 내 나름의 9회말 주자만루 2-3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이상 인디음악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인디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요정님이 아닌, 다른 인디뮤지션들의 음반도 꼭 사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통장 잔고가 시원찮아서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는 게 좀 문제지만.

오랜만에, 요정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티셔츠와 <행운아> 판매를 하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민트페이퍼 Life 음반도 있구나. 사실 이것까지 사면 뭔가 더 허전할 것 같아 그동안 사지 않고 미뤄놨는데, 이제는 사야 할 것 같다. 모르겠다. 딱히 이유를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이제는 사야 할 것 같다.

.... 달빛요정님, 그 곳은 어떤가요. 이 글을 쓰는데 요정님 1집의 <어차피>가 흘러나왔어요. 어차피 만날 순 없지만, 그냥 요정님을 떠올려봐요. 고기 반찬은 많이 드셨나요. 그곳은 어떤가요. 그곳에서도 LG 야구 챙겨 보시나요. 참 보고 싶네요. 그곳에서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음악 실컷 하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당신의 음악이 패배주의에 찌들었다고 했지만, 적어도 제게는 다른 어떤 가사보다 공감이 되고,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 꼭 하고 싶었어요. 늦었지만, 정말 감사드려요. 멋진 음악 만들어주셔서. 그리고 기억할게요. 내 청춘의 히어로이고, 영원히 히어로로 남을 당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