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1 December 2011

요즘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에 꽂혔다

Hamilton Hodell Talent Management
나는 뭔가 하나에 빠지면 좀 깊이 파는 성격이다. 그래서 가수를 좋아하게 되면 그 가수의 모든 앨범을 다 사야 하고(한때 넥스트 팬이었을 때 모든 앨범을 CD로 질렀음......콘서트 실황 하나만 빼고 ㅠㅠ 하지만 666 앨범 이후로는 안사고 있음 ㅡㅡ;)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 그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서 영화든 드라마든 다 챙겨봐야 한다(매튜 맥파디언(Matthew Macfadyen)이 나온 작품만 10개를 봤다는거.... 문제는 핥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라 무려 5명이었다는 거 ㅡㅡ; ㅋㅋㅋ)

뭐 어쨌거나. 이런 내 눈에 요즘 많이 들어오는 아즈씨 한명이 있으니, 그 이름도 생소....하려나. 영국의 작가이자 배우이자 코미디언이고 토크쇼 진행에 개인 팟캐스트에 자서전 두 권에 기타 등등 뭔가 하는 게 많은 아즈씨,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 당당하게 이분을 '아즈씨'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실제로 우리 아부지랑 4살 차이밖에 안나서 ㅡㅡ; 그렇다고 아부지라고 부를 순 없잖음!! 그리하야 애정을 담뿍 담아 '아즈씨'라고 부르고 있는 중. 뭐. 환갑 넘어도 아즈씨라 부를거임 내맘임 ㅡㅡ

여튼간에. 이 아즈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디씨 영드갤(DCinside 영국드라마 갤러리)이었다. 당시 모 트친님의 권유로 영드 <셜록(Sherlock)>에 발을 들인 나는 영국드라마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구글신께 도움을 요청했고, 구글신의 놀라운 인도로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거기서 한참 눈팅하고 댓글달고 글쓰고 그러면서 유동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데(?) 모 갤러가 유아용 프로그램인 <포코요(Pocoyo)>의 영상을 올려놓고 '여기 해설자가 스티븐 프라이'라고 한마디 했는데 댓글들 반응이 다들 '뭐? 스티븐 프라이라고?' 이거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프라이 아즈씨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갤러들이 왜 놀라는진 몰랐다. 단지 평소에 굉장히 근엄한 이미지인데 알고보니 이런 거 녹음했다... 뭐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날. 미드 <본즈(Bones)>의 한 에피소드 출연진에 아즈씨의 이름이 있는 걸 보았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를 유심히 본 나는 아즈씨가 그 에피소드에서 한 사제를 연기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사제가 좀 깐깐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IMDB에 들어갔는데 ㅋㅋㅋ 으악 ㅋㅋㅋ 그 사제가 아니라 FBI 심리학자인 고든 와이엇(Dr. Gorden Wyatt)이었어!!!

이렇게 프라이 아즈씨를 알게 되었지만 그의 팬이 된 계기는 좀 색달랐다. 이후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서 아즈씨를 또 만나게 되면서 아즈씨에 대한 호기심이 살짝 생겨서 위키피디아를 뒤적거렸다. 일단 그 정보의 양에 대략 압도하여 눈이 핑핑 돌 무렵(모니터로 긴 글 보는 게 아직은 부담스럽다 ㅠㅠ) 발견한 한 문장.

"스티븐 프라이는 GNU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의 후원자이다"

그랬다. 좀 어이없지만, 이게 내가 그의 팬이 된 계기였다. 아니 무슨 배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연기가 아니라 IT 관련 한 문장이냐...라고 하겠지만, 어찌할꼬.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자유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았고 우분투를 열심히 쓰고 있었기 때문에, 뭐랄까. 아즈씨는 IT 업종 종사자가 아닌데도 이 부분에 관심이 많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감동이었달까. (아. 뭐 이런거에 감동받는지. 나도 참. ㅡㅡ;) 실제로 2008년 GNU 25주년을 기념해서 직접 축하영상을 남기기도 했으니(이거 이제야 봤는데 리차드 스톨만이랑 리누스 토발즈는 물론 모듈에 코드에 커널 이야기 나오는 거 보고 으악 했음) 말 다했지. 나중에서야 아즈씨가 IT, 특히 애플 관련해서 매니아라고 부를 정도임을 알았는데, 만약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좋아했을거야 아마 ㅡㅡ;

아무튼. 뭐 그리하야 나는 이 아즈씨의 팬임돠. 하면서 덕후짓을 시작한지 몇달째. 이미 이전에 팠던 다른 배우들의 기록을 뛰어넘어, 1년도 안되어 아즈씨의 작품을 무려 8개나 달려주는 센스. (참고로 위에서 말한 매튜 맥파디언의 출연작 10개를 보는 데는 5년이 걸렸음. 아니 1년 365일 덕후짓만 할 순 없잖슴. ㅡㅡ;) 그리고 지금 두개 더 구했으니, 이거까지 다 달리면 딱 10개구나. 으헉. ㅡㅡ; 거기다 이분 자서전도 언젠간 지를테고 아즈씨 트위터야 뭐 매일 확인하고 아즈씨 블로그도 읽긴 읽는데 너무 길어서 내용파악 제대로 안되고 뭐 이런 덕질을 한참 하는 중이다. 나의 이 잉여력을 좋은 데 쓴다면 뭔가 해도 했을텐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에라이.

뭐 대강 잡다하게 썼는데, 결론은. 프라이 아즈씨 짱 좋다고. 으하하.

Saturday 24 December 2011

[영화잡담] 셜록 홈즈 2 - 그림자 게임 : 원작파괴? 포기하면 편하다

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이다. 아직 '셜로키언'이나 '홈지언'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원작을 몇 번이나 전부 읽었고, 각 작품의 제목만 대면 대강의 줄거리와 범인을 기억해낼 정도다. 한때는 원서 필사도 시도했었지만, 내가 필사하던 미국판이 원작과 표현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나서 영국판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그리고 셜록 홈즈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빠지지 않고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2년 전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 개봉 소식을 듣고 '이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고 주저없이 극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셜록 홈즈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니! 그 기대감은 극장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고, 베이커가 221번지가 극장 스크린에 나오는 순간 그 기대감은 만족감으로 바뀌는 듯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의 홈즈는 그곳에 없었다. 그의 친구 왓슨도 그 곳에 없었다. 비록 한쪽에 치우치긴 했지만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뛰어난 추리력을 가졌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자문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보다는 맨몸으로 부딪히고 가끔은 미치광이같은 모습을 보이며(바닥에 다윗의 별 그려놓고 넋놓고 바이올린 줄을 튕기는 장면은 정말 충격이었다) 사건 수사를 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면 그냥 맥없이 풀어지는 홈즈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홈즈보다 추리력은 떨어지지만(당연히!) 대신 홈즈를 끔찍히 챙겨주는, 홈즈의 둘도 없는 친구인 왓슨은 오히려 홈즈보다 더 추리를 잘 해내고 위험한 일에도 잘 뛰어드는 그런 왓슨이 되어버렸다. (곁다리지만, 1편에서 제일 고증이 잘 된 인물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작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홈즈를 기대했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은 과연 이렇게 바뀐 홈즈와 왓슨을 좋아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가 내린 대답은 '아니오'였고, 난 다시는 이 시리즈를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편 캐스팅 명단이 나오자마자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배우, 스티븐 프라이가 명단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셜록 홈즈> 시리즈이지만 홈즈와 왓슨이 아닌, 단순히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보기 위해 나는 이 영화를 선택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내용은 대강 이렇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막기 위해 간단히 써보자면, 당시 유럽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탄 테러들과 기타 사건을 조사하던 홈즈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아이린을 뒤쫓다 수상한 편지 하나를 나꿔챈 홈즈는 모리아티가 그 편지의 수신인을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의도치 않게 왓슨의 신혼여행을 망쳐버린 홈즈는 왓슨에게 사건을 함께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왓슨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프랑스 파리와 독일까지 연결된 홈즈의 수사가 펼쳐진다. 뒷 내용은 극장가서 확인하시라.

사실 1편에서 워낙 심하게 실망했기에 이번엔 아예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모리아티와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원작의 느낌을 어느 정도 살렸다고 생각했고, 홈즈와 왓슨의 캐릭터는 동명이인인 홈즈와 왓슨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메리는......포기하자. <네 개의 서명>에 나온 메리 모스턴은 이렇지 않았어. 하긴 아이린도 그랬는데 뭐.

여튼 인물뿐만 아니라 배경에서도 원작의 느낌이 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원작을 읽은 이들에겐 특히나 아주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얼마나 강력한 스포냐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그 장면부터 마지막까지가 어떻게 진행될지 큰 줄기를 바로 알아맞출 수 있다.

그리고 왓슨과 홈즈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걱정하던 모습이나, 체스를 가장한 셜록 대 모리아티의 심리싸움도 꽤나 볼만한 장면이었다. 여기에 홈즈의 여장이나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편한(!) 모습 등의 서비스 컷, 그리고 하숙집에 찾아온 왓슨을 맞이하는 홈즈의 모습이나 마지막 장면을 포함해 웃긴 장면도 여러 군데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2편이 완전히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캐릭터 파괴의 충격이 너무 커서 화면 효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1편의 화면 효과는 무난했던 것 같다. 그런데 2편은, 내가 <셜록 홈즈>를 보는 건지 <매트릭스>를 보는 건지 모를 정도의 장면이 종종 나왔다. 물론 이런 장면이 한번만 나오면 괜찮은데, 여러 번 나오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보다 화면에 집중하게 되어 이야기 흐름을 놓치게 된다. 다행히 이런 장면들이 주요 이야기 흐름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한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전편에서도 동일했지만 홈즈의 추리력이 많이 돋보이지 않은 것 같다. 홈즈의 매력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 버린 곳에서 의외의 단서를 발견한다던가 하는 것인데, 러닝타임 2시간 5분 동안 이런 장면이 딱 두 군데 나왔다. 하나는 무정부주의 단체의 아지트에서 비밀 통로 찾을 때, 하나는 암살자 흔적 찾을 때.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이나, 각 장면만 봤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되는 행동들이 나중에 큰 그림으로 합쳐져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빠지지 않았지만, '탐정' 홈즈의 모습은 많이 보지 못한 것같아 아쉽다.

사실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을 기대하고 보면 이 영화는 실망하는 면이 더 크다. 그렇기에 만약 원작의 팬이라면, 그냥 이름만 빌려왔다고 생각하고 보길 권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원작파괴로 얼룩진 영화가 아니라, 통쾌한 액션 추리극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하나는 BBC의 <셜록>이다. OCN에서 이 시리즈를 방영하면서 제목을 <셜록홈즈>라고 바꾸어 놓았는데, 사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셜록>이다. 잠시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면, 그 어떤 셜록홈즈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홈즈와 왓슨이 서로의 이름인 '셜록'과 '존'을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틀을 깬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에, <셜록>이란 제목은 이 작품의 하나의 정체성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OCN이 제목을 이런 식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황당해했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이 <셜록홈즈>라고 하면 꼭 <셜록>이라고 정정하곤 한다.

여튼 이 시리즈는 원작을 현대식으로 해석하면서도 원작의 세세함을 제대로 살린 작품이다. 만약 원작 전편을 한번 읽어봤다면, 1시즌 3편 속에 나오는 원작의 요소들을 찾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영국 그라나다 TV(현 iTV)에서 제작한 셜록홈즈 시리즈이다. 늘 원작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던 제레미 브렛 덕분에 그의 셜록 홈즈는 마치 원작을 그대로 브라운관으로 옮긴 듯한, 역대 최고의 셜록 홈즈로 평가되고 있다. 제레미 브렛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전편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남아있는 41편만 보더라도 왜 이런 평가를 받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내 경우, BBC 셜록을 다 보고 나서 이 시리즈를 추천받았을 때, 제일 첫 에피소드인 <보헤미안 스캔들>을 보며 '이런 80년대 시리즈를 지금 누가 볼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춤추는 인형>에서 암호문을 직접 몸으로 재현하는 홈즈를 보고 나니 그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아쉬운 게 있다면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인 <주홍색 연구>를 촬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세 명의 게리뎁>에서 홈즈가 왓슨을 챙기는 명장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레미 브렛의 셜록 홈즈는 최고다. 내 기억속에서 그를 뛰어넘을 홈즈는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