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1 December 2011

요즘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에 꽂혔다

Hamilton Hodell Talent Management
나는 뭔가 하나에 빠지면 좀 깊이 파는 성격이다. 그래서 가수를 좋아하게 되면 그 가수의 모든 앨범을 다 사야 하고(한때 넥스트 팬이었을 때 모든 앨범을 CD로 질렀음......콘서트 실황 하나만 빼고 ㅠㅠ 하지만 666 앨범 이후로는 안사고 있음 ㅡㅡ;) 배우를 좋아하게 되면 그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쭉 훑어서 영화든 드라마든 다 챙겨봐야 한다(매튜 맥파디언(Matthew Macfadyen)이 나온 작품만 10개를 봤다는거.... 문제는 핥는 배우가 한둘이 아니라 무려 5명이었다는 거 ㅡㅡ; ㅋㅋㅋ)

뭐 어쨌거나. 이런 내 눈에 요즘 많이 들어오는 아즈씨 한명이 있으니, 그 이름도 생소....하려나. 영국의 작가이자 배우이자 코미디언이고 토크쇼 진행에 개인 팟캐스트에 자서전 두 권에 기타 등등 뭔가 하는 게 많은 아즈씨,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 당당하게 이분을 '아즈씨'라고 부를 수 있는 건, 실제로 우리 아부지랑 4살 차이밖에 안나서 ㅡㅡ; 그렇다고 아부지라고 부를 순 없잖음!! 그리하야 애정을 담뿍 담아 '아즈씨'라고 부르고 있는 중. 뭐. 환갑 넘어도 아즈씨라 부를거임 내맘임 ㅡㅡ

여튼간에. 이 아즈씨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디씨 영드갤(DCinside 영국드라마 갤러리)이었다. 당시 모 트친님의 권유로 영드 <셜록(Sherlock)>에 발을 들인 나는 영국드라마 관련 자료를 찾기 위해 구글신께 도움을 요청했고, 구글신의 놀라운 인도로 이곳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거기서 한참 눈팅하고 댓글달고 글쓰고 그러면서 유동으로서의 입지를 굳혀가고 있는데(?) 모 갤러가 유아용 프로그램인 <포코요(Pocoyo)>의 영상을 올려놓고 '여기 해설자가 스티븐 프라이'라고 한마디 했는데 댓글들 반응이 다들 '뭐? 스티븐 프라이라고?' 이거였다. 그때만 해도 나는 프라이 아즈씨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었기 때문에 이 갤러들이 왜 놀라는진 몰랐다. 단지 평소에 굉장히 근엄한 이미지인데 알고보니 이런 거 녹음했다... 뭐 이런 느낌인가 싶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느날. 미드 <본즈(Bones)>의 한 에피소드 출연진에 아즈씨의 이름이 있는 걸 보았다. 그래서 그 에피소드를 유심히 본 나는 아즈씨가 그 에피소드에서 한 사제를 연기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그 사제가 좀 깐깐해 보였으니까. 그리고 내가 맞았는지 확인하기 위해 IMDB에 들어갔는데 ㅋㅋㅋ 으악 ㅋㅋㅋ 그 사제가 아니라 FBI 심리학자인 고든 와이엇(Dr. Gorden Wyatt)이었어!!!

이렇게 프라이 아즈씨를 알게 되었지만 그의 팬이 된 계기는 좀 색달랐다. 이후 <브이 포 벤데타(V for Vendetta)>에서 아즈씨를 또 만나게 되면서 아즈씨에 대한 호기심이 살짝 생겨서 위키피디아를 뒤적거렸다. 일단 그 정보의 양에 대략 압도하여 눈이 핑핑 돌 무렵(모니터로 긴 글 보는 게 아직은 부담스럽다 ㅠㅠ) 발견한 한 문장.

"스티븐 프라이는 GNU와 자유 소프트웨어 재단(Free Software Foundation)의 후원자이다"

그랬다. 좀 어이없지만, 이게 내가 그의 팬이 된 계기였다. 아니 무슨 배우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연기가 아니라 IT 관련 한 문장이냐...라고 하겠지만, 어찌할꼬. 지금도 그렇지만 그때도 여전히 자유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많았고 우분투를 열심히 쓰고 있었기 때문에, 뭐랄까. 아즈씨는 IT 업종 종사자가 아닌데도 이 부분에 관심이 많다는 게 신기하면서도 감동이었달까. (아. 뭐 이런거에 감동받는지. 나도 참. ㅡㅡ;) 실제로 2008년 GNU 25주년을 기념해서 직접 축하영상을 남기기도 했으니(이거 이제야 봤는데 리차드 스톨만이랑 리누스 토발즈는 물론 모듈에 코드에 커널 이야기 나오는 거 보고 으악 했음) 말 다했지. 나중에서야 아즈씨가 IT, 특히 애플 관련해서 매니아라고 부를 정도임을 알았는데, 만약 그때도 알았더라면.... 더 좋아했을거야 아마 ㅡㅡ;

아무튼. 뭐 그리하야 나는 이 아즈씨의 팬임돠. 하면서 덕후짓을 시작한지 몇달째. 이미 이전에 팠던 다른 배우들의 기록을 뛰어넘어, 1년도 안되어 아즈씨의 작품을 무려 8개나 달려주는 센스. (참고로 위에서 말한 매튜 맥파디언의 출연작 10개를 보는 데는 5년이 걸렸음. 아니 1년 365일 덕후짓만 할 순 없잖슴. ㅡㅡ;) 그리고 지금 두개 더 구했으니, 이거까지 다 달리면 딱 10개구나. 으헉. ㅡㅡ; 거기다 이분 자서전도 언젠간 지를테고 아즈씨 트위터야 뭐 매일 확인하고 아즈씨 블로그도 읽긴 읽는데 너무 길어서 내용파악 제대로 안되고 뭐 이런 덕질을 한참 하는 중이다. 나의 이 잉여력을 좋은 데 쓴다면 뭔가 해도 했을텐데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에라이.

뭐 대강 잡다하게 썼는데, 결론은. 프라이 아즈씨 짱 좋다고. 으하하.

Saturday 24 December 2011

[영화잡담] 셜록 홈즈 2 - 그림자 게임 : 원작파괴? 포기하면 편하다

나는 <셜록 홈즈> 시리즈의 팬이다. 아직 '셜로키언'이나 '홈지언'이라는 표현을 쓸 정도는 아니지만, 적어도 원작을 몇 번이나 전부 읽었고, 각 작품의 제목만 대면 대강의 줄거리와 범인을 기억해낼 정도다. 한때는 원서 필사도 시도했었지만, 내가 필사하던 미국판이 원작과 표현이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듣고 나서 영국판을 사기 위해 돈을 모으는 중이다. 그리고 셜록 홈즈를 소재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빠지지 않고 보려고 한다.

그래서 나는 2년 전 가이 리치 감독의 <셜록 홈즈> 개봉 소식을 듣고 '이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생각하고 주저없이 극장으로 달려갔다. 내가 그토록 사랑하는 셜록 홈즈를 스크린에서 볼 수 있다니! 그 기대감은 극장에 들어갈 때까지 계속되었고, 베이커가 221번지가 극장 스크린에 나오는 순간 그 기대감은 만족감으로 바뀌는 듯 했다.

하지만 거기까지. 나의 홈즈는 그곳에 없었다. 그의 친구 왓슨도 그 곳에 없었다. 비록 한쪽에 치우치긴 했지만 여러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졌고, 뛰어난 추리력을 가졌으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사건을 풀어내는 자문탐정 셜록 홈즈는 추리보다는 맨몸으로 부딪히고 가끔은 미치광이같은 모습을 보이며(바닥에 다윗의 별 그려놓고 넋놓고 바이올린 줄을 튕기는 장면은 정말 충격이었다) 사건 수사를 하면서도 사랑하는 여인이 나타나면 그냥 맥없이 풀어지는 홈즈로 변해있었다. 그리고 홈즈보다 추리력은 떨어지지만(당연히!) 대신 홈즈를 끔찍히 챙겨주는, 홈즈의 둘도 없는 친구인 왓슨은 오히려 홈즈보다 더 추리를 잘 해내고 위험한 일에도 잘 뛰어드는 그런 왓슨이 되어버렸다. (곁다리지만, 1편에서 제일 고증이 잘 된 인물은 레스트레이드 경감이 아닐까 생각한다.)

원작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은 홈즈를 기대했던 나는 영화를 보는 내내 이질감을 느꼈다. 그리고 '아서 코난 도일은 과연 이렇게 바뀐 홈즈와 왓슨을 좋아했을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았다. 내가 내린 대답은 '아니오'였고, 난 다시는 이 시리즈를 보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편 캐스팅 명단이 나오자마자 내 생각은 180도 바뀌었다. 내가 정말 존경하는 배우, 스티븐 프라이가 명단에 올라와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셜록 홈즈> 시리즈이지만 홈즈와 왓슨이 아닌, 단순히 '마이크로프트 홈즈'를 보기 위해 나는 이 영화를 선택했다.

ⓒ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영화 내용은 대강 이렇다. 스포일러를 최대한 막기 위해 간단히 써보자면, 당시 유럽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폭탄 테러들과 기타 사건을 조사하던 홈즈는 모든 사건의 배후에 제임스 모리아티 교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후 자신이 사랑하는 여인인 아이린을 뒤쫓다 수상한 편지 하나를 나꿔챈 홈즈는 모리아티가 그 편지의 수신인을 노리고 있음을 알게 된다. 이후 의도치 않게 왓슨의 신혼여행을 망쳐버린 홈즈는 왓슨에게 사건을 함께 해결하자고 제안하고, 왓슨이 그 제안을 받아들이면서 프랑스 파리와 독일까지 연결된 홈즈의 수사가 펼쳐진다. 뒷 내용은 극장가서 확인하시라.

사실 1편에서 워낙 심하게 실망했기에 이번엔 아예 별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가, 생각보다 괜찮았다. 모리아티와 마이크로프트 홈즈는 원작의 느낌을 어느 정도 살렸다고 생각했고, 홈즈와 왓슨의 캐릭터는 동명이인인 홈즈와 왓슨이라 생각하니 오히려 편하게 볼 수 있었다. 메리는......포기하자. <네 개의 서명>에 나온 메리 모스턴은 이렇지 않았어. 하긴 아이린도 그랬는데 뭐.

여튼 인물뿐만 아니라 배경에서도 원작의 느낌이 나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 부분은 원작을 읽은 이들에겐 특히나 아주 강력한 스포일러가 될 것이기 때문에 생략한다. 얼마나 강력한 스포냐면, 이 장면을 보는 순간 그 장면부터 마지막까지가 어떻게 진행될지 큰 줄기를 바로 알아맞출 수 있다.

그리고 왓슨과 홈즈가 티격태격하면서도 서로를 걱정하던 모습이나, 체스를 가장한 셜록 대 모리아티의 심리싸움도 꽤나 볼만한 장면이었다. 여기에 홈즈의 여장이나 마이크로프트 홈즈의 편한(!) 모습 등의 서비스 컷, 그리고 하숙집에 찾아온 왓슨을 맞이하는 홈즈의 모습이나 마지막 장면을 포함해 웃긴 장면도 여러 군데 나왔다.

하지만 그렇다고 2편이 완전히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캐릭터 파괴의 충격이 너무 커서 화면 효과가 눈에 들어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지만, 1편의 화면 효과는 무난했던 것 같다. 그런데 2편은, 내가 <셜록 홈즈>를 보는 건지 <매트릭스>를 보는 건지 모를 정도의 장면이 종종 나왔다. 물론 이런 장면이 한번만 나오면 괜찮은데, 여러 번 나오다 보니 오히려 이야기보다 화면에 집중하게 되어 이야기 흐름을 놓치게 된다. 다행히 이런 장면들이 주요 이야기 흐름을 끊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과한 느낌이 들었던 건 사실이다.

그리고, 이건 전편에서도 동일했지만 홈즈의 추리력이 많이 돋보이지 않은 것 같다. 홈즈의 매력 중 하나가 다른 사람들이 무심코 지나쳐 버린 곳에서 의외의 단서를 발견한다던가 하는 것인데, 러닝타임 2시간 5분 동안 이런 장면이 딱 두 군데 나왔다. 하나는 무정부주의 단체의 아지트에서 비밀 통로 찾을 때, 하나는 암살자 흔적 찾을 때. 상대의 행동을 예측하는 능력이나, 각 장면만 봤을 때는 이해가 잘 안되는 행동들이 나중에 큰 그림으로 합쳐져서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빠지지 않았지만, '탐정' 홈즈의 모습은 많이 보지 못한 것같아 아쉽다.

사실 아서 코난 도일의 원작을 기대하고 보면 이 영화는 실망하는 면이 더 크다. 그렇기에 만약 원작의 팬이라면, 그냥 이름만 빌려왔다고 생각하고 보길 권한다. 그렇다면 이 영화를 원작파괴로 얼룩진 영화가 아니라, 통쾌한 액션 추리극으로 즐길 수 있을 것이다.

* 개인적으로, 아서 코난 도일의 <셜록 홈즈>를 좋아한다면 꼭 추천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

하나는 BBC의 <셜록>이다. OCN에서 이 시리즈를 방영하면서 제목을 <셜록홈즈>라고 바꾸어 놓았는데, 사실 이 시리즈의 제목은 <셜록>이다. 잠시 제목에 얽힌 이야기를 하자면, 그 어떤 셜록홈즈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홈즈와 왓슨이 서로의 이름인 '셜록'과 '존'을 부른 적이 없다고 한다. 그 틀을 깬 것이 바로 이 작품이기에, <셜록>이란 제목은 이 작품의 하나의 정체성과도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OCN이 제목을 이런 식으로 바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굉장히 황당해했다. 지금도 주위 사람들이 <셜록홈즈>라고 하면 꼭 <셜록>이라고 정정하곤 한다.

여튼 이 시리즈는 원작을 현대식으로 해석하면서도 원작의 세세함을 제대로 살린 작품이다. 만약 원작 전편을 한번 읽어봤다면, 1시즌 3편 속에 나오는 원작의 요소들을 찾는 재미를 쏠쏠하게 느낄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영국 그라나다 TV(현 iTV)에서 제작한 셜록홈즈 시리즈이다. 늘 원작에 충실할 것을 요구했던 제레미 브렛 덕분에 그의 셜록 홈즈는 마치 원작을 그대로 브라운관으로 옮긴 듯한, 역대 최고의 셜록 홈즈로 평가되고 있다. 제레미 브렛이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서 전편을 다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남아있는 41편만 보더라도 왜 이런 평가를 받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내 경우, BBC 셜록을 다 보고 나서 이 시리즈를 추천받았을 때, 제일 첫 에피소드인 <보헤미안 스캔들>을 보며 '이런 80년대 시리즈를 지금 누가 볼까'하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춤추는 인형>에서 암호문을 직접 몸으로 재현하는 홈즈를 보고 나니 그 생각은 이미 안드로메다 저편으로 날아가버렸다. 아쉬운 게 있다면 홈즈와 왓슨의 첫 만남인 <주홍색 연구>를 촬영하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세 명의 게리뎁>에서 홈즈가 왓슨을 챙기는 명장면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제레미 브렛의 셜록 홈즈는 최고다. 내 기억속에서 그를 뛰어넘을 홈즈는 쉽게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Sunday 6 November 2011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 당신을 기억하며.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이하 달빛요정, 요정).

오늘, 2011년 11월 6일은 그가 이 땅을 떠난지 꼭 1년이 되는 날이다. 그리고 바깥에는 마치 그날처럼 비가 내리고 있다. 지금 나는, 달빛요정님의 전 앨범을 들으면서 내 기억속에 남아있는 그를 꺼내보려고 한다.

아쉽게도, 난 단 한번도 그를 만나본 적이 없다. 사실 그럴 수 있는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내가 그의 팬(사실 팬이라고 말하기엔, 그의 앨범 전부를 가지고 있다는 게 전부라서 팬이란 말을 쓰기도 뭐하다) 중의 한 사람이 될 거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나 싶다.

내가 요정님의 팬이 된 것은 2010년 어느 봄날이었다. 당시 딴지일보 독투였나? 아무튼 어딘가에 누군가가 달빛요정님의 3.5집 수록곡인 <나는 개>의 가사를 올려놓은 적이 있었다. 그런데 가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딱 봐도 이건 MB를 까는 곡이라고 생각한 나는 바로 스트리밍 사이트에 가서 이 곡을 찾아 들었고, 무언가에 홀린 듯 전 앨범을 그 날 전부 들어버렸다.

그런데, 달빛요정이란 저 이름이 뭔가 익숙해서 생각해보니, 몇 년 전에 가입해놓고 잘 들어가지 않던 음악사이트의 회원 이름이었다. 달빛요정.

진짜 우습게도, 난 원맨밴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름을 보면서 '뭐 저런 이름이 다 있나'하고 넘겨버렸다. 우리집 근처까진 아니었지만, 당시 타지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던 상황이라 어디든 그의 공연을 보러 갈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전혀 가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거기다 인디음악을 하는 원맨밴드라니. 당시 내 머릿속에서 이 두 가지는 '촌스러운 음악'이라는 조합을 만들어 버렸다. 만약 시간을 거슬러 그 때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그런 생각은 당장 집어치우고 바로 공연장으로 달려가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그때가 난 너무 후회된다.

여튼 그렇게 요정님을 알게 되었지만, 통장 잔고가 바닥을 기고 있는 상황이라 요정님의 앨범을 사는 건 쉽지 않았다. 그래서 스트리밍으로 만족하고 있다가, 요정님의 왕팬이었던, 내 트친 중 한분께서 무조건 지르라고 권유하시길래, 일단 요정님 트위터로 앨범을 구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하지만 3.5집은 그렇다 쳐도 1집부터 전부를 살 수 있으리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다행히 홈페이지에 신청하면 살 수 있다는 답을 받았다. 그리고 질렀다. 아주 과감하게.

며칠 뒤 요정님의 앨범이 내 손에 들어왔다. 부모님께 걸리면 끝장이었기 때문에 남자친구의 연구실로 주문을 했는데, 담배 냄새가 너무 심해서 바깥에 며칠 동안이나 내놔도 냄새가 빠지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해주더라. 물론 난 그 이야기를 듣고 '요정님이 직접 포장하셨구나!'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했더랬다. 그리고 그날 집에 와서 CD 포장비닐을 뜯고 CD를 전부 살펴보는데, 깜짝 놀랐다.

6장 모두 요정님의 싸인이 되어 있었다. 3.5집만 그런 줄 알았는데, 전부다 그랬다. CD 한 장마다, 요정님의 싸인이 되어 있었다. 너무 감동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전혀 생각지 못한 선물이었기에. (지금도 이 CD들은 내 자랑거리 중 하나다.)

그리고 거의 몇 주 동안은 요정님의 음악을 들으면서 지냈다. 감동이었다. 그리고 후회했다. 왜 내가 그분의 공연을 보러 가지 않았을까. 왜 인디음악에 대한 편견에 쩔어서 그분의 음악을 무시했을까. 그래서 다짐했다. 준비하고 있는 시험이 끝나면, 그 때는 어디든 요정님의 공연을 보러 가겠노라고.

하지만 그런 기분도 오래 가지 못했다. 어느 순간부터 요정님의 음악을 듣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나중에는 CD장 한구석에서 먼지를 덮어쓰기까지 했다. 거기다 당시 모 아이돌 그룹에 빠져있던 나는 요정님의 음악을 거의 뇌리에서 지워버리다시피 했다.

그 무렵이었다. 요정님께서 갑자기 쓰러지셨다는 트윗을 본 건.

나 때문인 것 같았다. 내가 그분의 음악을 등한시해서 그런 것 같았다. 그래서 계속 기도했다. 내가 잘못했다고, 제발 다시 깨어나게 해달라고. 요정님의 음악을 계속 들으면서, 그저 깨어나길 기도했다. 그래서 얼마 후 조금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소식이 올라왔을 땐, 당연히 요정님이 일어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나는 더이상 그분의 공연을 보러갈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더이상 그의 새 앨범을 살 수도 없게 되었다. 그분은, 다른 세상에서 더 멋진 음악을 하기 위해, 잠시 우리의 곁을 떠났다. 2010년 11월 6일 오전 8시 13분, 지금으로부터 꼭 1년 전에.

요정님의 발인일, 오늘처럼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그 날, 요정님을 떠올리다가 문득 넘버링 232가 적힌 3.5집 CD의 냄새를 맡아 보았다. 도저히 사라질 것 같지 않은 담배 냄새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그분이 가신 게 실감나면서, 이제 9회말 주자 만루 풀카운트 상황에서 당신이 아닌 내가 타석에 서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이 글을 쓰면서, 지난 1년을 되돌아본다. 난 여전히 내 나름의 9회말 주자만루 2-3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더이상 인디음악에 대한 편견을 갖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인디음악을 찾아서 듣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요정님이 아닌, 다른 인디뮤지션들의 음반도 꼭 사서 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물론 아직 통장 잔고가 시원찮아서 실행에 옮기진 못한다는 게 좀 문제지만.

오랜만에, 요정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았다. 티셔츠와 <행운아> 판매를 하고 있다. 아, 그러고보니 민트페이퍼 Life 음반도 있구나. 사실 이것까지 사면 뭔가 더 허전할 것 같아 그동안 사지 않고 미뤄놨는데, 이제는 사야 할 것 같다. 모르겠다. 딱히 이유를 말로 표현하기 힘든데, 이제는 사야 할 것 같다.

.... 달빛요정님, 그 곳은 어떤가요. 이 글을 쓰는데 요정님 1집의 <어차피>가 흘러나왔어요. 어차피 만날 순 없지만, 그냥 요정님을 떠올려봐요. 고기 반찬은 많이 드셨나요. 그곳은 어떤가요. 그곳에서도 LG 야구 챙겨 보시나요. 참 보고 싶네요. 그곳에서는 그동안 하고 싶었던 음악 실컷 하면서 사셨으면 좋겠어요. 

누군가는 당신의 음악이 패배주의에 찌들었다고 했지만, 적어도 제게는 다른 어떤 가사보다 공감이 되고,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는 이야기, 꼭 하고 싶었어요. 늦었지만, 정말 감사드려요. 멋진 음악 만들어주셔서. 그리고 기억할게요. 내 청춘의 히어로이고, 영원히 히어로로 남을 당신을.

Friday 21 October 2011

소피아의 우분투 입문기

△ 우분투 4.10 로그인 화면 (from OMG! Ubuntu)


지금으로부터 7년전 10월 20일, 우분투 4.10이 처음 모습을 내밀었단다. 나는 몰랐는데, OMG Ubuntu에 관련글이 올라와서 알게 되었다. 여튼 우분투의 7번째 생일을 보내며(사실 우리나라 시각으론 어제와 오늘에 딱 걸리는 그 순간이었겠지만) 나와 우분투의 입문기인지 동거기인지 모를 무언가를 한번 풀어보려 한다.

때는 바야흐로 2010년 여름 어드매. 당시에도 지금처럼 SNS에 미쳐있었던 나는 트위터 타임라인에서 내 친구가 적어놓은 세 글자를 보았다. 그것은 바로 '우분투'. 그 순간 나는 '리눅스'라는 세 글자를 반사적으로 떠올렸다. 도대체 어디서 '우분투 리눅스'라는 이름을 본 건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무튼 호기심 강하고 삽질 좋아하는 성격인 나는 그 순간 바로 우분투 10.04 LTS CD 이미지를 다운받았다. 하지만 뭘 어떻게 할 수가 있어야지. 그래서 구글신께 도움을 요청하여 VirtualBox(이하 버박)라는 녀석을 알게 되었고, 역시 구글신의 도움을 받아 요녀석을 노트북(Windows Vista)에 설치하고 CD 이미지를 넣었지만....반응이 없었다 ㅠㅠ 어찌해야 하나 싶어 다시 구글신께 여쭈어보니 '이전 버전을 설치해보거라'라는 답을 주셨고, 정보의 바다에서 9.10 CD 이미지를 찾아 겨우 버박에 설치하여 우분투와 만나게 되었다.

심상치 않은 첫만남은 그렇게 버박에서 듀얼 부팅으로 이어졌다. 그럴 수 있었던 게, 이미 이전부터 오픈소스 프로그램에 관심이 많아서 노트북에 있는 모든 프로그램을 싹다 정품으로 바꿀 생각에 MS Office와 한글 대신 오픈오피스를, 포토샵 대신 김프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별 무리없이 듀얼부팅으로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거기다 ntfs-3g를 써서 NTFS 파티션에 있는 파일들까지 대부분 쓸 수 있었기 때문에 큰 불편함은 없었다.

그렇게 1주일 정도를 쓰고 나니 잊었던 이름이 떠올랐다. Lucid Lynx, 바로 10.04 LTS였다. 그래, 이제는 되겠지 하는 생각에 업데이트 매니저에서 10.04 업데이트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터미널에 나오는 작업과정을 지켜보는데, 뭔가 이상한 메시지가 보이는 것이었다. 뭐더라. 지금은 가물가물한데, '좋지 않은 방법입니다'였던가. 아마 뭔가를 삭제하는 분위기였던 것 같다. 하지만 이미 벌어진 일이고 뭐 알아서 되겠지 라는 심정에 그냥 내비두고 재부팅이 되는 걸 확인했는데, 검은 화면에 뜨는 한 줄.

grub rescue>>

그때가 아마 새벽 1시쯤이었나 그랬을 거다. 순간 잠이 확 달아났고, 이제 어떡하나 싶어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친오빠가 쓰다가 물려준 노트북인데 나중에 집에 와서 노트북 보고 이게 무슨 짓이냐고 다그칠 게 뻔한데 어쩌냐는 생각부터 이 안에 들어가있는 온갖 자료들은 이제 못보는구나 이런 생각까지. 아 정말 그 순간은 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러다 9.10 듀얼부팅까지는 잘 되었다가 10.04에서 막힌 걸 생각해내고, 필사적으로 9.10을 설치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거실에 XP가 설치된 데스크탑이 한 대 있어서 부모님 몰래 컴퓨터를 켜고 구글신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다. 듀얼 부팅을 위해 만들어둔 9.10 CD는 RW라 이미 포맷되어 다른 녀석이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는 10.04 LTS가 나온지 몇 달 된 상황이라 우분투 홈페이지에서는 9.10 다운로드 링크를 찾기가 힘들었다. 대신 다행히도 9.10 이미지를 링크해 놓은 블로그를 찾을 수 있었고, 바로 이미지를 다운받아 CD로 구운 뒤 노트북에 설치하기 시작했다. 듀얼 부팅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이미지를 굽고 난 다음부터는 쉬웠다. 단지 노트북을 영영 못쓰게 되면 어쩌나 하는 생각만 가득했을 뿐이다.

그리고, 2시간의 공포는 사라지고, 새벽 3시쯤 내 노트북은 우분투 9.10의 로그인 화면을 내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난 다시는 비스타를 만날 수 없었다. 온갖 MS 실행파일들도 마찬가지였다. (MS 실행파일들은 이후 Wine을 사용해서 쓰긴 했지만, 하루 정도 쓰고 이상해서 지워버렸다.)

초반에는 비스타를 살리기 위해 온갖 잡다한 걸 다 해보았다. 며칠 동안 구글신에게 '복구 CD를 내놓아주시오'라고 빌었지만, 어째 받는 녀석들마다 버박에서 테스트하면 영 이상했다. 제대로 실행되는 녀석들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그때마다 '백업 제대로 해놓을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지만, 이미 일은 벌어진 뒤였다.

그렇게 나는 노트북을 켤 때마다 비스타 복구CD를 찾았고, 그걸 찾기 위해 파이어폭스를 열었고, 검색창에 단어를 입력하려면 당연히 한글 입력기 설정이 되어 있어야 하고, 거기다 포토샵을 써야 될 상황이라 바로 김프를 열어야 했었고, 단어를 외울 일이 있어 플래시카드 프로그램인 jMemorize를 썼는데 이게 크로스 플랫폼이라 우분투에서도 돌아가는 녀석이었고, 어느날부터 비스타 복구CD를 찾는 빈도가 줄어들었고, 대신 XP 이미지를 찾아 버박에 깔아버렸고.....

뭐 저러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우분투에 익숙해졌다. 이후 9.10을 두달 정도 쓰다가 NTFS 파티션이 나눠져 있는 게 영 불편한데다 딱히 윈도우를 쓸 일이 별로 없을 것 같아 아예 전체 포맷을 해버리고 노트북에 우분투만 단독으로 깔아놨다. 그리고 얼마 뒤 업데이트 매니저에서 LTS로 업데이트하니까 웬걸. 언제 오류났었냐는 듯이 완전 깔끔하게 업데이트되고. 아 그때의 허무함이란. ㅋㅋㅋㅋㅋ

여튼 그리고 지금은 우분투에 오픈박스를 설치해서 대부분의 작업을 터미널로 하고 있으며, 뭔가 새로운 것을 경험해보고 싶어 아치 리눅스로 넘어갈 준비를 이제 막 시작했다. (그런데 이거 쉽지않다 ㅡㅡ; 아마 버박에 몇번이나 깔았다 지웠다를 해야 넘어갈 수 있을 것 같다 ㅠㅠ)

1년 4개월 남짓 우분투를 쓰면서 했던 삽질의 대부분은 터미널과 관련된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겐 도스 시절의 향수가 있어서 마우스 클릭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터미널을 열어서 한번씩 해보곤 했다. (덕분에 apt-get cp mv mkdir dpkg 등등 아주 기초적인 명령어를 익힐 수 있었다.)

하지만 사실 나는 컴퓨터에 대해 완전 무지하다. 가끔 사람들이랑 만나서 컴퓨터 이야기가 나오면 아톰 어쩌구 셀러론 어쩌구 뭐 이런 이야기들 나오는데 사실 하나도 못알아먹는다. 내가 리눅스 쓴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컴퓨터공학 전공인 줄 알았단 사람도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우분투 리눅스를 쓰기 위해 필요한 건 딱 세 가지다. 일단 한글을 읽을 수 있어야 하고, 다음으로 마우스 클릭을 할 수 있어야 하며, 마지막으로 인터넷 사용을 할 수 있어야 한다. 다른 건 필요없다. 사실 우분투에서 터미널은 복잡한 작업을 간단히 하기 위함이나, 아주 가끔 터미널 명령어로만 실행되는 프로그램을 실행하기 위함이 아니고서야 거의 쓸 일이 없다.

나는 윈도우나 맥OS가 '나쁜' 혹은 '덜 떨어진' 운영체제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들 그냥 같은 운영체제일 뿐이다. 단지 우리나라의 ActiveX 떡칠이나 hwp 문서 등등 특수한 상황 때문에 윈도우가 압도적으로 많이 쓰일 수밖에 없을 뿐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무조건 리눅스, 그중에도 무조건 우분투'를 외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대신 나는 딱 한 마디를 하고 싶다. 윈도우를 쓰듯이, 맥도 리눅스도 쓸 수 있다고. 거기다 우분투처럼 윈도우 쓰듯이 그냥 쓸 수 있는 리눅스도 있다고. 그러니까 써보지도 않고 '리눅스는 어렵고 불편해서 싫어요'라는 말은 하지 말라고. 그건 리눅스가 가진 매력을 다 경험해보지도 않고 '넌 매력없어'라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상 우분투의 7번째 생일을 맞이하야, 심심해서 써보는 우분투 입문기....치고는 뭔가 복잡한 글은 여기서 끝 ㅡㅡ)v

Sunday 16 October 2011

[영화잡담]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지금까지 총 몇 편의 영화를 봤는진 사실 모른다. 하지만, 그중에서 10여년이 지나도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는 영화는 이 작품 하나 뿐이다.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소설가 존 그리샴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 하지만 난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이 어땠는진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영화 자체로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겐 충격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일단 영화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미시시피주 켄튼 지역에서 흑인 소녀 토냐가 백인 청년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거의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잡히고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 하지만 이미 비슷한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난 적이 있는 걸 알고 있는 토냐의 아버지 칼 리 헤일리(사무엘 잭슨 분)는 재판 전날 법정에 몰래 숨어 들어가고, 다음날 재판장으로 들어가는 두 범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 일로 칼 리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자신의 동생을 변호했던 백인 변호사 제이크 브리갠스(매튜 맥커너히 분)에게 자신의 변호를 부탁한다.

이후 제이크는 미시시피 법대에 다니는 엘렌 로아크(산드라 블록 분)와 자신의 스승 루션(도널드 서덜랜드 분)의 도움을 받아 칼 리의 변호를 준비한다. 그러나 흑인을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라는 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년 동안 잠잠했던 KKK단의 공격을 받아 자신의 집이 불탄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협박과 폭행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칼 리의 변호를 맡아 무죄판결을 이끌어낸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법정 영화에다 인종차별의 코드를 집어넣은 영화다. 10여년 전에 내가 느꼈던 것도 딱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내가 놓친 것이 보였다. 그건 바로 '사람의 이중성'이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를 보자. 그는 흑인과 백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도 칼 리를 '친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 재판 바로 직전 새벽에 칼 리는 제이크의 그런 모습이 위선이었음을 말해준다. 자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제이크에게 '당신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 당신은 내가 어디 사는지 모르지. 우리 아이들은 함께 놀 수가 없어.'라고 말하면서.

에이지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NACCP에서 처음 기금 이야기를 할 때는 기금을 모으기 힘들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수고비를 주겠다는 말에 반색을 하며 기금을 모은다. 그것도 거짓말을 해서. 이것 역시 칼 리가 부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은 바였고, 그는 자신이 들은 것을 에이지 목사에게 그대로 말한다. '기금을 모으실 때 제 변호기금이 아니라 제 가족들이 굶어 죽을 상황이라 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라는 한 마디로.

NAACP는 어떤가. 그들은 칼 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 했다. 그래서 칼 리에게 제이크 대신 자신들의 변호인단을 선택하라고 했다. 기금도 이미 다 모은 상태였다. 하지만 칼 리는 거절했다. 대신 제이크를 선택했다. 나중에서야 나오지만 그 이유는 제이크가 백인이기 때문에 백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변호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칼 리를 돕겠다는 이들이 칼 리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NAACP를 제외한 두 사람의 변화도 보여준다(NAACP 관계자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에이지 목사는 법정 앞에서 흑인들과 함께 칼 리의 무죄를 주장하고(물론 이것을 변화라고 보는 건 비약일 수도 있다), 제이크는 당연히 패소한다고 생각한 평결을 최후 변론으로 뒤집은 뒤, 칼 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사회정책분야에 관심이 많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칼 리의 그 눈빛, 제이크와 에이지 목사를 보며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비판하는 그 눈빛 앞에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나도 결국은 그들과 같이 이중적이며 모순덩어리일 뿐이었으니까. 나도 결국은 그들을 나의 잣대로 마음대로 판단하고 비난하는 부류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 영화가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나 역시 제이크와 에이지 목사처럼, 칼 리의 그 눈빛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물론 내 안의 모순을 깨는 게 쉽지 않은 걸 알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발견한 게 있는데, 내용과는 관련없는 부분이라 이렇게 따로 쓴다.

하나. 서덜랜드 부자가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같은 편이 아니다. 아버지인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는 제이크의 스승인 루션 역으로, 아들인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는 성폭행범의 동생이자 KKK단의 일원인 프레디 역으로 나왔다. 닮은 사람 두 명이 서로 다른 편을 연기하는 걸 보니 좀 이상했다. ㅋㅋ

둘. 이 영화에서 제이크 역을 맡은 매튜 맥커너히(Matthew McConaughey)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도 변호사 역을 맡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타임 투 킬>에서는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이었던 반면,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는 속물의 성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듯하다.

셋. 이 영화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떼로 나올 줄이야. 위의 세 명과 함께,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 사무엘 잭슨(Samuel Jackson),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까지. 오프닝에 나오는 배우들 이름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O_O

Thursday 6 October 2011

RIP, Steve Jobs.
1955 - 2011
(Photo from Apple.com)

Saturday 1 October 2011

Come back to Blogger.com

그러니까 언제였더라. 아주아주 예전에 블로그스팟에 블로그를 하나 떡하니 만들었는데 그때는 지금보다 디자인이 더 허접해서(!) 이틀인가 하고 때려치웠었다. 그 이후로 다.시.는. 구글 블로그에 손을 대지 않겠다! 고 생각했건만. 요렇게 또 글을 남기는구나.

뭐. 구글빠가 어디 가나염. 그리고 테터툴즈 1.x때부터 시작된 블로그 본능도 어디 가나염. 긴글 쓰고 싶은 충동이 구플이나 페북으로 다 채워지는 것도 아닌데 말이지염. 긴글 충동이 위키 쓴다고 다 채워지는 것도 아니고 말이예염 ㅡㅡ; 그리하야 다시 돌고 돌고 돌아 이곳에 정착을 했다는거 ;;

하지만 뭐... 이런저런 사정상 글을 자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뭔가 생각날 때 끄적끄적 한번 적어보겠사와요. 물론 기대는 금물... 이라고 쓰고 나니 별로 기대하는 사람도 없겠구나 싶어서 갑자기 서글퍼지는군. 어흑.

여튼 첫글은 여기까지!! 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