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turday 31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9)

유럽생활 넷째날(2) - 에스페란토 박물관, 지구본 박물관, 음악의 집(Haus der Mus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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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luton! Mi estas Sofia, kaj mi logxas en Koreio. Mi estas 29-jara virino. Mi studas Esperanto en lernu.net. Esperanto estas tre interesa lingvo, mi pensas. Mi estas komencanto de Esperanto, sed mi volas studi gxin dauxre. Dankon amiko! Gxis!

이 글을 보는 사람들 중에서 내가 위에 쓴 저 글을 알아볼 수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오프라인 인맥 중에는 한 사람도 없을 것이고, 온라인 인맥 중에는 아주 가끔 한명씩 나올까 싶다. 전세계 2백만명이 쓴다고 알려져 있는, 국가도 나이도 인종도 초월한 세계어 에스페란토. 인공어 중에선 가장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이 언어를 내가 저렇게 쓰리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아니, 사실 관심은 있었다. 트친 중에서 에스페란토에 굉장히 관심많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분의 블로그를 보면서 뭔가 신기해보였던 건 있었다. 그렇지만 사실 이걸 쓰는 나라가 있는 것도 아니고, 당장 쓸만한 곳이 없다고 생각해서 그동안 배우진 않았다.

이런 내 생각을 바꿔놓은 곳이 바로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전시실 중 하나인 에스페란토 박물관이었다. 이곳은 U3 헤렝가세 역 근처에 있었는데, 알고보니 내가 며칠 전 노이에부르크에 갔다가 우반 타러 내려갔던 그 골목 바로 옆이었다. 아, 정말 슈테판플라츠 근처는 벗어날 수가 없구나!

하지만 그 전에, State Hall을 보느라 잠시 잊고 있었던 내 배꼽시계를 무시때리기 미안하여 밥을 먹으러 슈테판플라츠 근처를 돌고 돌고 돌아야 했다. 왜냐. 하필 그 때가 온갖 성당의 미사가 다 끝나는 시간이라 내가 State Hall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개미새끼 하나 없어보....이진 않았지만! 아무튼 사람 별로 없던 그곳 일대가 사람들로 가득찼기 때문이다. 그러니 음식점은 안그렇겠는가 ㅡㅡ; 앉을 수 있는 곳을 찾아서 거리를 헤매다가 거의 지쳐서 들어간 한 음식점. 가게 점원들이 대부분 분홍빛 메이드 복장을 하고 있는 곳이었는데, 너무 배가 고파서 일단 양 많아보이는 걸로 시켰다. 그리고 좀 오랫동안 앉아있으니 점원분께서 음식을 가져다 주셨다. 그리고 나는 우아하게 칼로 음식을 썰어서 입에 넣었는데!!

삶은 시금치를 모짜렐라 치즈에 버무린 그 맛을 아십니꽈.

진짜 느끼해서 한 입을 먹자마자 바로 입맛 실종. 내 미각을 돌리도 엉엉. 하지만 이왕 주문하기도 했고, 여기서 포기하면 앞으로의 여정이 굉장히 힘들어질 거란 생각에 진짜 억지로 먹어댔지만, 결국 끝까진 먹지 못했다. 이때의 후유증이 남았는지, 얼마 전 학교 앞에서 바질잎이 박힌 피자를 먹었는데 그때 생각나서 토할 뻔했다 ㅡㅡ;

여튼 그렇게 배를 채우고 들어간 박물관, 갑자기 눈이 즐거워졌고 머릿속에 상투스가 샤아~ 하고 울려퍼졌으니! 내가 들어가 본 모든 건물 중에서 티켓 파시는 분이 제일 훈남이시다! 훈남을 보면 눈이 즐거워지는 것은 여성의 본능일지니. 후훗. 눈의 즐거워짐을 몸소 느끼며 티켓을 사는데, 들어올 때부터 지구본 박물관이 눈에 띄길래 일단 그 곳 표부터 사고 물어봤다. 혹시 에스페란토 박물관이 어디냐고. 그러자 직원분이 내 바로 뒤를 가리킨다. 아, 표시가 작아서 못알아봤다. ㅡㅡ; 그래서 에스페란토 박물관 표도 사고 싶다고 하니까 그분이 이러신다.

"에스페란토 박물관과 지구본 박물관 콤보 티켓이 있습니다. 합해서 6유로고요, 지금 지구본 박물관 하나만 5유로 계산하셨으니까, 1유로만 더 주시면 콤보 티켓으로 바꿔드리겠습니다."

그리하여 나님, 앞뒤 따질 것도 없이 콤보 티켓을 받고 에스페란토 박물관으로 향했더랬다. 아, 마지막에 Thank you.라고 말하자 Welcome.이라고 답하던 그 직원분의 훈남미소, 아직도 눈앞에 아른거린다. 내 남친에게 이런 미소를 기대.........하지 말자 이놈아. ㅡㅡ; 내 남친은 더 훈남이니까(라고 쓰고 뒷수습 쩐다고 읽는다)

아무튼 그렇게 들어간 에스페란토 박물관. 그곳은 아주 작은 공간이었지만, 에스페란토를 만든 자멘호프의 사진부터 에스페란토 대회 사진과 에스페란토 관련 물품들, 에스페란토로 쓰여진 글과 노래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또한 에스페란토 학습 프로그램인 kurso를 직접 체험해볼 수도 있었다. 또한 이곳에선 다른 인공어들도 체험해볼 수 있었는데, 클링온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세상에, 햄릿의 그 유명한 'To be or not to be' 이걸 클링온으로 들으니 갑자기 무슨 42세기 뭐 그런 곳으로 날아간 느낌이야! ㅋㅋㅋ

여튼 그 작은 공간을 둘러본 뒤 위층의 지구본 박물관으로 올라갔다. 지구본으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것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았지만, 들어가 보니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지구본의 크기가 이렇게 다양할 줄이야! 심지어 새끼손가락보다 지름이 더 작은 지구본도 있었다. 그리고 앞의 State Hall에서 보았던 Vincenzo Corinelli를 이 곳에서 더 만날 수 있었고, 예전에 과학 시간에 천체의 움직임을 공부할 때 쓰던 기계도 볼 수 있었다. 또한 이전의 지도를 디지털화해서 현재의 지도와 비교해볼 수 있는 장치도 있었는데, 동양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런지 같은 지도 내에서 서양과 동양의 정확도가 많이 차이나 보였다.

하지만 내가 이 박물관에서 제일 기억에 남았던 건, 지구본에 비추는 조명 아래에서 키스를 하고 있던 커플이었다. 이봐, 여기 박물관이라고! ㅠㅠ 사실 부럽다고! 으헝헝 ㅠㅠ

여튼 녹초가 되다시피 한 이 내몸을 어이할거나. 지구본 박물관에선 진짜 의자만 보이면 앉아서 쉬었다 ㅡㅡ; 그때 박물관에 오셨던 분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저의 정신줄 놓은 모습으로 안구 테러를 당하신 것에 심심한 위로따윈 없다. ㅡㅡㅋㅋㅋ 뭐 나는 지구본도 지구본이지만, 이 건물엔 쉬러 들어온 거나 다름없었으니, 빈을 떠나기 전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곳으로 넘어가기 전에 사진이 빠지면 섭하다! 여기까지의 여정을 한번 되짚어보며, 늘 그랬듯이 섬네일을 클릭하시라!

자 이제 음악을 큰 틀로 잡은 이 여행에서 가보고 싶었던 또 한 곳을 찾아 캐른트너 거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낮에 오페라 하우스 앞에서 그 곳 표지판을 본 적이 있어서 다시 오페라하우스 앞까지 일단 가보자 싶어 또 열심히 걸어갔다. 하지만 그곳엔 낮에 본 표지판은 없었다 ㅠㅠ 그래서 그동안 아끼고 아꼈던 넥원이의 구글맵을 열어 근처를 뒤지기 시작했는데, 분명 그 가까이에 있었지만 내 눈엔 잘 보이지 않았다. 결국 두 번이나 길을 물어서야 찾아갈 수 있었는데, 알고 보니 나는 정말 그 근처에서 뺑뺑이를 돌면서 헤매고 있었다. 이제야 말하지만 그때 내게 길을 가르쳐 준 두번째 분(사실 첫번째 분은 길을 모르셨음 ㅡㅡ;)은 근처 한 가게 앞에서 완전 카리스마 쩌는 모습으로 줄담배를 피우고 있었는데, 처음엔 무서워서 다른 분께 물어보려다 그 골목에 개미새끼 한마리 안보이길래 걍 물어봤더랬다. ㅡㅡ; 레알 무서웠심ㅡㅡ;

빈 여행의 마지막을 장식할 이 곳은 음악의 집(Haus der Musik, 하우스 데어 무지크)이다. 이전에 보았던 예술사박물관의 고음악 전시실이 말 그대로 박물관 전시실이라면, 이곳은 음악 체험관에 가까운 곳이다. 음악을 그저 듣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소리 파형을 볼 수도 있고, 단순히 악보만 보고 지나치는 게 아니라 직접 그 곡을 들어볼 수도 있고, 그저 음악만이 아니라 소리 그 자체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혼자서 둘러볼 만한 곳은 아니었고, 오히려 가족들이 함께 와서 음악을 '가지고 노는' 곳이라 생각하면 딱 맞을 것 같았다. 내가 갔을 때도 혼자서 둘러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고 다들 가족 단위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어떤 곳인지는 섬네일 클릭 ㅋ

5층까지 죽어라 걸어올라갔다가 맨 위층의 음반가게를 지나 쭉 내려오니 어느새 밤이다. 잠시 길치모드가 발동되어 일단 큰길로 나가자 생각하고 사람 많은 곳을 찾아 가니 어느새 슈테판 성당 근처 ㅋ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걷는데, 내 발걸음을 멈추는 이들이 있었다. 바로 이 사진이다.

ⓒ syn.sophia
빈에서 보내는 마지막 밤, 나는 건물 속에 갇혀 있는 음악이 아니라 거리에서 살아있는 음악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고음악 전시실에서 우연히 들었던 성악곡처럼 생각지도 못한 만남이었기에 더욱 기뻤다. 네온사인으로 가득한 캐른트너 거리 중간에서 펼쳐진 작은 음악회, 이제 과거의 음악의 도시가 아닌 현재의 음악의 도시 빈을 바라보라는 그런 뜻이었을까. 그렇게 한참 음악을 듣다가 발길을 돌려 우반 역으로 향했다.

이후 숙소 근처에 도착해서 역시 또 돌아다니다 바게트 빵으로 만든 핫도그를 사서 먹었는데 빵이 좀 딱딱한 거 말고는 정말 맛있었다. 이후 나는 유럽에서 어딜 가든 근사한 식당에선 절대 밥을 먹지 않았고 대부분의 식사를 빵으로 해결했다. 그 덕이었을까, 3주가 지난 뒤 몸무게를 재어 보니 2kg가 줄어 있었다. ㅋㅋㅋ

아무튼 빈에서의 마지막 밤은,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갔다가 다시 현재로 돌아오며 끝이 났다.

Tuesday 27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8)

유럽생활 나흘째(1) - 무작정 걷다가 횡재한 순간,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State H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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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에서 온전히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어떻게 하면 이 마지막 날을 보낼 수 있을까 고민하다 또 인터넷 뒤적뒤적.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빈의 박물관은 우리나라와 다르게 주말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았다 ㅡㅡ; 그래서 한번 가볼까 생각했던 파피루스 박물관은 결국 가보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이집트 문명엔 별 관심 없었으니까.

하지만 꼭 가보고 싶은 곳이 있었으니, 바로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State Hall(State Hall에 대응하는 우리말이 생각나지 않아 걍 영어로 씀;;)! 현지어로는 Der Prunksaal der Österreichischen Nationalbibliothek이라고 하는 곳인데, 심심풀이로 웹서핑하다 우연히 알게 된 곳이었다. 음악의 도시로 알려진 빈에 이런 곳이 있다니! 정확히 어떤 곳인지는 나중에 풀어보기로 하고, 다행히 이 곳은 주말에도 여는 곳이라 일단 일찍 나가서 좀 걷다가 이곳을 한번 찾아가보기로 했다. 숙소 주인 아주머니께서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하셨지만 너무너무 가기 싫어 땡치고 또다시 캐른트너 거리로 고고씽!

처음에 빈에 왔을 때는 캐른트너 거리가 지겹다는 부모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 거리만 몇 번 지나가다 보니 슬쩍 지겹기도 했다 ㅡㅡ; 하지만 그건 상점가를 지나갈 때나 그랬고, 정 반대쪽으로 걸어가다 보니 갑자기 아주 큰 건물이 나왔다. 설마 하고 지도를 펼쳐봤는데, 오. 마이. 갓.

빈 오페라하우스(Wien Staatsoper, 국립 오페라 극장)에 도착하셨습니다 고갱님.

안타깝게도 시간이 맞지 않아 내부 관람은 실패했지만, 그냥 건물 자체를 둘러보는 것만으로 가슴이 뛰었다. 역시 오페라하우스답게 음반가게도 있었고, 벽에 붙은 LCD TV 광고판에는 공연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지나가다가 공연 티켓 판매하는 아저씨도 만났고.

그렇게 오페라하우스 옆을 몇 바퀴 돌다가 이제 다른 곳으로 가봐야겠다 싶어 또 정처없이 걸었다. 물론 지도를 가지고 있었고 거기다 넥원이의 구글맵도 항상 대기모드였으며 큰 길에는 주변 지도가 대부분 나와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안그랬음 다니다 길잃으라고 ㅡㅡ;

여튼 처음에 찾아가려고 했던 곳은 또다른 박물관이었는데, 아마 음악 관련한 무언가였으리라. 하지만 길치모드는 유럽이라고 달라지지 않는다. 그러다 근처에 한 무리의 사람들이 계단으로 올라가기에 따라 가봤다. 계단 벽에는 알베르티나 박물관(Albertina Museum)이라고 되어 있었고, 이곳도 어렴풋이 지도에서 본 것 같아 주저하지 않고 위로 올라갔다. 알베르티나 박물관 건물은 뭔가 수줍은 아가씨의 느낌이었는데, 안에 들어가보진 않았다. 대신 그 옆에 보이는 아주 큰 건물이 눈에 띄어 걸어가보니, 정말 으악 하는 말밖에 나오지 않을 정도로 큰 건물이 나왔다. 며칠 전 포스트에서 썼던 노이에부르크와 비슷한 느낌?

그렇게 건물에 압도되어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고개를 돌리니, 옆쪽엔 나비 박물관이 있고, 또 그 옆에 눈에 좀 익은 안내판이 하나 보였다. 호프부르크 지구. 와, 정말 이 지구가 엄청나게 넓구나 생각하면서 이제 어디로 갈까 싶었는데, 안내판에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State Hall이 이 근처라고 나와있는 걸 발견, 고민없이 바로 찾아갔다. 이날 싸돌아다니면서 찍은 사진들을 만나려면 섬네일 클릭! (참고로 저 섬네일에 있는 W 표시는 빈 도시 내에서 역사적으로 의미있는 곳을 표시한 것이라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눈엔 무슨 물고기 비슷한 게 그려진 전시회 현수막이 나타났다. 설마 하고 가까이 가보니,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마크가 나와있는 현수막이다. 그렇다. 이곳이다. 그토록 오고 싶었던 곳,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State Hall에 드디어 도착했다! 우선 입구를 찾아 들어갔는데 티켓을 파는 것 같아 가서 물어보니 티켓을 사야 한단다. 7유로짜리 티켓을 사고 입구에 들어가니 여자 직원분이 표를 보고 설명을 해준다.

"이 곳은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단, 플래시를 터뜨리면 안되며, 또한 케이스 내부 전시물품은 촬영할 수 없습니다."

내가 혹시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재차 확인한 뒤에 고개를 들어 State Hall를 바라봤다. 그리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있었다. 빈을 여행하는 3박 4일 동안 여러 곳을 둘러봤지만, 그냥 멋있다 뿐이지 더 이상의 감동은 없었다. 하지만, 이 곳은 달랐다. 1층밖에 안되고 그것도 끝에서 끝까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멀다거나 한 곳도 아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너무 벅차서 울컥하는 느낌까지 받는 곳은 이 곳이 처음이었다.

거기다 케이스에 전시되는 예전 생물도감들은 어찌나 생생한지! 사진으로 남길 수는 없었지만, 요즘처럼 기계로 출력하지도 않을 텐데 이 정도의 퀄리티가 가능하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그것도 19세기 이전에 말이다. 그 정교함에 박수를. 그러면서도 도감에 유니콘과 다른 바다괴물들이 나와 있는 걸 보며 이 사람들의 세계관과 상상력에 살짝 웃음이 나기도 했다.

한 시간 정도를 돌아보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들어서 이 곳을 나오면서 생각했다. 보통 빈 여행 자료를 찾다 보면 자연사 박물관이나 미술사박물관(예술사박물관 본관), 벨베데르 궁전이나 레오폴드 미술관, 쇤브룬 궁전 정도를 추천하는 걸 볼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곳보다 가장 먼저 이 곳을 추천하고 싶다. 빈이 단순히 음악의 도시만은 아니라는 걸, 빈은 다른 모든 곳에 학문이 함께 하는 도시라는 걸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때로는 도서관으로, 때로는 미술로, 때로는 음악으로, 때로는 과학으로...

나는 이번 여행을 하면서 각 도시를 '음악'이라는 공통점으로 묶고, 개별 도시의 차이점을 하나의 단어로 말하고 싶었다. (포스트 제목에 '음악 + α'라고 적어놓았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그리고 이 곳을 떠나며 빈의 +α가 무엇인지 확신하게 되었다. 그것은, 학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무려 100장 가까이(정확히는 126장) 사진을 찍은 곳. 그 사진들을 하나하나 인화해서 아예 건물 하나를 만들고 싶었던 곳. 누군가에겐 그저 책이 많이 쌓인 곳일 뿐일 테지만 나에게는 한번 들어오면 떠나기 싫은 그런 곳이었던,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State Hall의 사진을 고르고 골라 이제 공개한다. 섬네일 클릭!

Friday 23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7)

유럽생활 셋째날(2) - 벨베데르 궁전과 빈 시민공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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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을 타고 다시 벨베데르로 고고씽. 중간에 잘못 탔나 싶어서 한번 내려주시고 ㅡㅡ;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나 모르겠다 ㅡㅡ; 아무튼 그렇게 찾아간 벨베데르는 입구조차 찾기 힘든 곳이었다. 아니 궁전이라는데 입구는 왜이리 작은겨! 다행히도 트램 정류장에 나온 지도대로 찾아가니 어느 구석탱이(!)에 'Belvedere'라고 써진 깃발이 있는 걸 발견하고 그곳으로 들어가니, 하궁(Lower Belvedere)이 나타났다.

점심때이긴 했지만 계속 돌아다녀서 조금 지쳤는지 크게 입맛도 없었고 일단 표부터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매표소를 찾아가는데, 이건 뭔가요 너님 왜이러세요 완만한 경사가 쭉 이어진 길을 죽어라 걷는 건 아니잖아요 ㅡㅡ; (실제로 벨베데르 궁전에 가보면 하궁과 상궁(Upper Belvedere) 사이를 지나다니며 조깅하는 사람들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왜 그러나 싶었는데, 직접 걸어보니 알겠더라 ㅡㅡ;) 여행 전에 워킹화 사길 천만 다행이다 싶을 정도. 못 믿겠다면 섬네일을 클릭하여 나오는 사진들로 대강 유추해보시라 ㅡㅡ;

아무튼 상궁 근처에 가니 사람들이 갑자기 궁 한쪽으로 사라진다. 그 사람들을 따라가 보니 Tickets라고 적힌 안내판이 있다. 개고생해서 올라와 티켓을 사고 나니 살짝 배가 고파져서 일단 다시 나갔다. 그런데 주위에 음식점 따위 없ㅋ엉ㅋ 아놔 ㅡㅡ; 그나마 하나 있는 게 샐러드 가게였는데, 당시 고기와 빵이 살짝 질려서(얼마 먹었다고!! ㅡㅡ;) 채소가 좀 그리웠는데, 토마토 샐러드가 땡겨서 주저없이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때까진 몰랐다. 내가 이 토마토 샐러드를 정말 억지로 먹게 될 줄이야. ㅡㅡ;

일단 음식점에 들어가서 토마토 샐러드와 오렌지 주스를 달라고 했다. 종업원이 피타(빵, 씬피자 도우같이 생겼음)도 먹겠냐고 하길래 그러겠다고 했다. 음식이 나왔고, 처음엔 올리브유 드레싱 가득한 토마토 샐러드가 정말 맛있었다. 거기다 피타까지! 배도 채우고 입도 깔끔하게 하고 가겠구나 했는데, 모든 재앙은 이때부터 시작되었으니,

생 올리브를 씹었다.

으웩. 그 순간부터 올리브유 드레싱은 완전 초 느끼함으로 다가왔고, 피타와 오렌지주스가 아니었으면 이 샐러드 끝까지 다 못먹을 뻔했다. 내가 먹은 접시엔 올리브가 다섯 개 들어 있었는데, 세 개까지만 먹고 결국 남겨야 했다 ㅠㅠ 아아 생 올리브는 진짜 먹을 게 못되는구나 ㅠㅠ 거기다 계산할 때 보니 공짜로 주는 줄 알았던 피타가 유료였더라 ㅡㅡ; 너님들 서비스 정신은 이따우이신가염이라고 말해 주고 싶었으나 어쩌랴. 내 영어는 짧고 입에는 샐러드 안에 있던 양파 냄새가 가득하니. ㅡㅡ;

아무튼 그렇게 배를 채우고 조금 전에 산 티켓을 들고 상궁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티켓을 내미니 옷과 가방을 카운터에 맡겨 두라고 한다. 50유로센트를 내면서 역시 이곳은 이런 게 필수인가 보다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ㅡㅡ; 심지어 나는 가방만 맡겼으니, 돈과 중요한 건 전부 옷 주머니에 넣어다녔기 때문이다. 그래서 덥기는 제대로 덥고 짐 맡긴 효과는 거의 없고 뭐 그랬다.

ⓒ Fritz Schwarz-Waldegg
출처 :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클릭)
그렇게 들어간 벨베데르 상궁 내부는 정말 넓었다. 1층에는 현대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었는데, 클림트의 <키스>를 보러 온다고 하지만 나는 이 층도 정말 맘에 들었다. 미술엔 문외한이지만 에곤 쉴레라는 사람의 작품도 만날 수 있었고, 화가들의 자화상이 전시된 곳에서 '자화상은 그 그림이 그려질 때의 생각을 반영한다'였나? 그 비슷한 글이 벽에 적혀 있는 걸 보며 공감하기도 했다.

그 중 가장 인상깊었던 작품이 오른쪽에 있는 바로 저 그림이었다. <자각(Selbsterkenntnis)>이란 제목의 저 작품을 보며 나는 저 눈동자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치, 내 스스로를 바라보라는 듯, 내가 누구인지 직시하라는 듯. 한참을 그 앞에 서 있었다.

그러다 그 자리를 떠나 계단을 올라갔지만, 아쉽게도 나는 미술에 문외한 중 문외한인데다 이제부터는 중세 미술부터 다시 시작했기 때문에 정확히 뭐가 뭔지 크게 담아두지 못했다. 사진이라도 남기면 참 좋겠지만, 벨베데르 궁전은 내부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그런데도 몰래 사진찍는 사람 있더라 ㅡㅡ;) 어쩔 수 없다.

ⓒ Gustav Klimt
출처 : Österreichische Galerie Belvedere(클릭)
물론 그렇다고 하나도 기억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일단 벨베데르 상궁 내부 자체가 이전의 화려했던 시대를 떠올릴 수 있게 만들어져 있었고, 사람들이 이곳에 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인 클림트의 <키스(Der Kuss)>도 직접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키스>보다는 다른 작품인 <유디트 I(Judith I)>에 더 눈길이 갔다. 뭔가 몽환적으로 나를 바라보는 유디트의 눈빛이 내 눈을 사로잡았기 때문도 있지만, 사실 이 작품이 더 기억에 남는 건 숙소에 돌아와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였다. 유디트의 손에 들린 저게 사람 머리였을 줄이야!

알고보니 이 작품의 모델인 유디트는 이스라엘의 과부로, 저 손에 들린 목의 주인공은 당시 이스라엘을 침략한 홀로페네우스이다. 성서 외경인 유디트서에 나오는 내용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논개와 비슷한 이미지처럼 느껴졌다. 이 작품 이외에도 그녀를 표현한 작품은 많은데, 이정도로 몽환적이고 관능적인 그림은 없는 것 같다. (참고 : 클릭)

(아, 여기까지 본 사람들은 <키스> 이야기는 안하냐고 할지 모르겠는데, 난 별 감흥이 없었다 ㅡㅡ; 배부른 소리냐고? 아니다! 유디트가 너무 강렬해서 그랬다;;)

그나저나 벨베데르 궁전에서 본 색다른 장면 두 가지. 하나, 가이드와 함께 온 아이들이 궁전 바닥에 앉아서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 모습. 이런 장면이 굉장히 일상적인 듯 익숙한 분위기였지만 나는 이런 일이 처음이라 굉장히 신선했었다. 둘, 그림 옆 오디오 가이드 표시 밑에 가끔 보이는 손 표시. 그렇다. 오디오 가이드뿐만 아니라 몇몇 그림에는 수화 가이드도 제공하고 있었다. 이번 여행 중 들어갔던 어느 곳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라 정말 인상깊었다.

자, 이제 벨베데르 궁전을 나와 오늘의 마지막 목적지인 빈 시민공원으로 가자. 아주머니께서 알려주신 대로 또 트램을 타고 가다 MQ 근처에서 그냥 내려서 우반으로 갈아탔다. 이상하게 나는 트램보다 우반이 더 편해 ㅡㅡ; 그렇게 내린 곳이 U2 노선 시민공원(슈타트파크, Stadtpark)였는데, 이곳 역은 다른 역과 분위기부터 달라서 나는 여기서부터 공원 시작인 줄 알았는데, 공원 입구는 몇 걸음 더 걸어가야 나왔다.

빈 강을 바라보며 공원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인다. 날씨가 워낙 추우니 이해한다. 일단 소기의 목적대로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이곳에서 꼭 보고 싶었던 요한 슈트라우스와 슈베르트 동상을 찾았다. 이 공원에는 이 둘 말고 다른 사람들의 동상도 있지만 내 지식이 짧아 누군지 몰라서 그냥 지나쳤다.

공원은 꽤 넓었다. 호수도 있고, 나무도 많고. 겨울이라 생기있는 느낌은 아니었지만, 그저 적당히 쉬기에 좋은 느낌. 추운 날씨인데도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나온 어머니도 보였고, 자기들끼리 재미있게 노는 아이들도 있었고, 호수 위에는 세상 모든 근심을 초탈한듯 유유히 물 위를 노니는 오리떼도 있었다. 사실 쉬러 간 거라 사진은 별로 없지만, 어쨌거나 자세한 모습은 섬네일 클릭질 롸잇나우 ㅡㅡv

사실 이 날의 마지막 계획은 빵 하나 사들고 와서 벤치에 앉아 저녁을 때우는 것이었지만 일단 주변에 빵집도 안보일 뿐더러 날이 추워서 벤치에 오래 앉아 쉰다는 건 불가능했다 ㅋㅋ 그래서 해가 질 즈음에 다시 일어나 일단 빵집을 찾는데! 젠장 U2 칼스플라츠(Karlsplatz) 역 안에 있는 빵집은  주말이라 5시 되면 칼같이 문을 닫는 것이다! 진짜 5시 딱 되어서 도착했는데 ㅠㅠ

이제 뭘 먹어야 하나 고민하던 나는 일단 숙소 근처까지 가서 뭐라도 뒤져보리라 생각했고, 케플러플라츠에서 내려서 무작정 근처 상점가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우연히 발견한 작은 가게에서 슈니첼(손바닥보다 더 큰 돈가스라고 생각하면 됨) 샌드위치가 보이길래 에라 모르겠다 하고 주문한 뒤 길을 걸어가며 먹기 시작했다. 완전 맛있었다 ㅠㅠ 단지 배고파서가 아니라, 정말 맛나더라 ㅠㅠ

아무튼 좌충우돌 셋째날도 여기서 끝! 이제 빈에서 온전히 보내는 마지막 하루가 남았다.

Wednesday 21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6)

유럽생활 셋째날(1) - 트램 이야기 / 빈 중앙묘지(Zentralfriedhof)


* 본 포스트는 웹 버전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 syn.sophia
빈에서 홀로 맞는 첫 아침이다. 여전히 날은 흐리지만, 창문 너머로 바라보는 아침은 고요함 그 자체다. 늘 자동차 소리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에 익숙해져 있다가 이렇게 조용한 아침을 맞으니 새롭기도 하고 기대되기도 한다. 하지만 사실 추운 날씨 때문에 움직이기 싫은 마음도 가득하다. ㅡㅡ; 그래 나 귀차니즘 쩌는 소피아야 ㅡㅡ;

여튼 오늘 가려고 한 곳은 빈 중앙묘지와 빈 시민공원이다. 여행기 제일 첫 포스트에서 밝혔듯,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소재는 '음악'이다. 저 두 곳 역시 보기에는 전혀 음악과 상관없어 보이지만, 사실은 굉장히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특히 빈 중앙묘지는 더더욱.

아무튼 아침밥을 먹으며 아주머니께 오늘은 중앙묘지와 시민공원에 가겠다 하니까 나를 굉장히 이상하게 보신다 ㅡㅡ; 거기 볼 거 하나도 없다면서 ㅡㅡ; 하지만 나는 반드시 가겠다고 했고, 아주머니께서는 내게 거기에 더해서 벨베데르 궁전에 가서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를 보고 오라면서 아예 세 군데의 트램노선까지 빠싹하게 알려주셨다 ㅡㅡ; 미술엔 문외한이라 사실 별로 보고 싶진 않았는데, 사람들이 그 그림을 보러 거기에 간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긴 해서 그냥 가보기로 했다.
ⓒ syn.sophia

자 이제 빠르고 편리하지만 한편으로 좀 칙칙한 우반을 벗어나서 트램을 타러 가자! 하는 마음으로 숙소를 나섰다. 반대쪽 길에서는 사람들이 모여서 횡단보도 신호위반을 하고 있었고(이 장면을 보며 유럽 사람들이 신호 대박 잘지킨다는 환상이 팍 깨짐) 나는 3일 교통권을 사기 위해 케플러플라츠역으로 일단 향했다. 그리고 나서 이제 트램 정류장을 찾아야 하는데, 오 마이 갓. 아무리 봐도 트램(Tram)이라고 써진 곳이 없는 것이다! 대박 황당 ㅡㅡ; 결국 근처에서 두 바퀴 정도를 돌고 나서야 민박집 아주머니께서 말씀하신 트램 정류장을 찾았는데, 그제서야 내가 왜 정류장을 찾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트램의 이름이 트램이 아니었다.

옆에 첨부한 사진이 바로 트램 정류장을 나타내는 표지판인데, 빈 트램의 정식 명칭은 슈트라센반(Strassenbahn, 거리 전차 뭐 그런 의미)이다. 저 사진은 벨베데르 궁전 앞에서 D번 트램을 기다리며 찍은 건데, 이 표지판 밑에는 이 부근의 지도와 트램이 도착하는 시간 등이 나와 있다. 역시 사진을 클릭하면 관련 사진들이 튀어나온다는 거 ㅡㅡ; 그러니 딴 맘 먹지 말고 클릭하시라(여행기가 너무 쓸데없이 길어져서 사진들은 걍 이렇게 한몫에 모으고 있음 ㅡㅡ; 절대 귀찮아서 그런 거 아니다 ㅡㅡ;)

71번 트램을 타고, 빈 중앙묘지로 향했다. 빈 중앙묘지는 이 트램의 종점에 있는데, 근처 정류장만 세 개다. 그렇다고 아무데서나 내리면 안되고 꼭 두번째 입구(Zentralfriedhof 2)에서 내려야 한다. 하도 넓어서 잘못 내리면 개고생한다. 아무튼 여길 지나는데 울산 현대자동차 생각이 났다. 젠장 자동차 공장 앞 버스 정류장만 몇 개야 ㅡㅡ;

도착한 빈 중앙묘지. 묘지다 보니 바로 앞에서 꽃을 팔고 있다. 뭐, 나는 구경하러 간 것이지 조의를 표하러 간 게 아니기 땜시롱(...사실은 돈 아끼느라 ㅠㅠ) 꽃은 패스. 그런데 여긴 우리처럼 흰색 꽃만 묘지에 가지고 들어가는 게 아니라, 여러 색깔의 꽃을 갖고 갈 수 있었다.

어쨌거나, 빈 중앙묘지는 말 그대로 묘지다. 하지만 절대 빈 중앙에 있지는 않다. 그냥 합동묘지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곳인데, 이 곳은 단순히 '묘지'에서 끝나지 않는다. 우리가 아는 유명한 음악가들을 한번 대보자. 으음, 브람스 베토벤 슈베르트 모차르트... 여기서 좀더 나가면 요한 슈트라우스 부자와 브람스 주페... 이들의 무덤이 전부 이 곳에 모여 있다. 어디선가 읽은 바로는 빈 정책 담당자 중 한 사람의 아이디어로 이 곳이 만들어졌다던데, 유명한 음악가들의 무덤을 모아놓으면 일반인들도 이 곳을 잘 이용하게 될 것이란 생각이었다나. 그것은 현실이 되었으니, 나는 음악가들의 무덤을 보러 갔지만 나 말고도 몇몇 가족들이 꽃을 들고 누군가의 무덤을 향해 가는 걸 볼 수 있었다.

물론 음악가들의 묘지만 이 중앙묘지에 있는 건 아니다. 위키피디아(영문) 페이지에 보면 여기 묻힌 사람들 중 유명한 사람들의 목록이 나와 있는데, 배우나 화가, 작가, 수학자 등등 여러 분야에서 이름있는 사람들이 묻혀져 있다. 또한 무슬림 지구와 개신교인 지구, 불교인 지구 등도 나눠져 있으니, 이것만 봐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묻혀있을까 싶기도 하다.

여튼 트램에서 내리자마자 보이는 입구를 따라 조금 걸어가니 32A 구역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오늘의 첫 목적지, 음악가들의 묘지. 조금 더 걸어가니 안내도가 나온다. 보기엔 엄청 넓어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진짜 한바퀴 다 도는데 30분? 아니다. 후다닥 돌면 10분도 안걸린다 ㅡㅡ; 하지만 그 묘비에 적힌 음악가들의 이름을 보며 내가 들어본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뭔가 반갑기도 하고. 굉장히 독특한 느낌이었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정말 독특했다.

이 곳에선 다녀온지 두 달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에피소드가 있었다. 모차르트의 묘비 앞에 서 있는데, 사실 나도 모차르트의 묘비인지는 몰랐다. 그러다 내 뒤에 외국인 부부로 보이는 두 관광객이 사진을 찍으려고 서 있는 걸 보고 옆으로 비켜주었다. 그중 남자분이 사진을 찍더니 내가 서 있던 그 묘비 앞으로 가서 이리저리 둘러보고, 어이없다는 듯이 상대분에게 한 마디를 했다.

"It's Mozart! Kate, it's Mozart!"

순간, 모차르트의 말년 이야기가 생각났다. 마침 그 때 mp3에 모차르트의 <레퀴엠> 파일을 넣어 간 게 생각나서 바로 mp3를 꺼내 음악을 듣기 시작했다. 그 곡까지 듣고 있으니 뭔가 먹먹한 느낌이 몰려왔다. 어렸을 때는 천재 음악가로 이름을 날리고 사람들의 부러움과 찬사를 받아왔지만, 말년에는 노름에 빠지고 결국 아무도 알아주는 이 없이 쓸쓸히 세상을 떠났다지... 그의 장례식 행렬을 끝까지 따라간 사람이 없어 그가 정확히 어디 묻혔는지 아는 사람도 하나 없고, 그나마 추정한 위치가 현재 빈 세인트 막스 공원 안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곳에 기념비를 세우고 빈 중앙묘지에 묘비를 세웠지만, 세인트 막스 공원에 있는 그 곳이 진짜 그의 무덤인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 그래서 그의 묘비가 더욱 특별하게 보였는가 보다. 나는 그 묘비 앞에서 한참을 떠나지 못하다, mp3 배터리가 다 되어서 노래가 더이상 나오지 않았을 때에야 32A 구역을 나올 수 있었다.

이제 중앙묘지를 나와야 할 시간. 그 전에 묘지 안에 있는 성당을 찾아갔다. 칼 보로매우스 키르헤(Karl-Borromäus-Kirche, Charles Borromeo Church, 혹은 이 곳에 묻힌, 이전 시장의 이름을 딴 Dr.-Karl-Lueger-Gedächtniskirche (Karl Lueger Memorial Church))라고 불리는 곳인데, 원형 지붕부터 지금까지의 성당들과는 느낌이 달랐다. 내부장식은 더더욱 달랐으니, 마치 비잔틴 교회의 느낌? 나도 이 부분은 문외한이지만, 슈테판 대성당이나 성 베드로 교회와는 느낌이 많이 달랐다. 슈테판 대성당에서의 일 때문에 혹시나 돈 내고 들어가야 하는 곳일까봐 완전 초긴장했다가 그냥 들어가면 되는 곳인 걸 알고 안도하고 둘러본 뒤 그렇게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아슬아슬하게 점심시간이 다 되었을 무렵, 묘지에서 나오자마자 아주 썰렁한 거리를 마주친 나는 벨베데르 궁전 앞에서 점심을 먹겠다 생각하고 다시 트램에 올랐다. 남들은 볼 것 없다고, 도대체 왜 가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할지도 모를 중앙묘지. 하지만 내게 이 곳은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었고, 갈 만한 가치가 있던 곳이었다. 마지막으로, 그 곳의 사진을 이 곳에 올려둔다. 이젠 알아서들 섬네일 클릭하시리라 믿고. 벨베데르로 고고씽. ㅡㅡv

Monday 19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5)

유럽생활 둘째날(2) : 호프부르크 지구, 고음악과 중세 무기를 만나다


* 이 포스트는 웹 버전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의 양해를 바랍니다.

혼자 다니는 빈 여행을 처음 시작한 곳은 예술사박물관(Kunsthistorisches Museum) 중 중세 갑옷과 무기 전시실이었다. 이 건물의 정식 명칭은 노이에부르크(Neue Burg, 신왕궁)이며, 예술사박물관의 두 전시실(중세 갑옷과 무기 / 고전 음악)과 에페수스 박물관 이외에도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열람실 등이 자리잡고 있는 곳이다. 노이에부르크는 호프부르크(Hofburg) 궁 지구 건물 중 하나인데, 20세기 초반에 지어진 건물임에도 마치   그 이전에 지어진 것처럼 다른 건물들과 굉장히 잘 어우러져 있었다.

여기서 잠깐. 위의 문단을 보면 내가 '빈 예술사박물관 중 중세 갑옷과 무기 전시실'이라고 써놓은 부분이 있다. 그렇다면, 빈 예술사박물관엔 다른 전시실도 있단 말인가? 답을 하자면, 그렇다! 사실 이 포스트를 쓰기 전까지도 호프부르크 지구와 무제움스 콰르티아(Museums Quartier, 이하 MQ)가 헷갈려서 결국 위키피디아 영문판을 정독하고 나서야 이 둘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정리 차원에서 이 둘의 차이를 적어둔다.

ⓒ syn.sophia
사진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이곳 역시 궁 내부에 여러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경복궁이 단순 관광지로 쓰이는 반면, 이곳 호프부르크는 대통령 집무실, 승마 학교,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 열람실 등 여러 용도로 지금까지도 쓰이고 있다.

옆 사진이 바로 호프부르크 지구 안내판인데, 저 중 빨간 부분이 호프부르크 내부 건물들이다(초록색은 잔디밭). 물론 저 많은 건물들이 한번에 다 지어지진 않았으며, 13세기부터 20세기까지 계속 확장된 지역이 바로 이 곳이다. 그리고 MQ는 저 안내판 가장 왼쪽에 보이는 세로로 긴 분홍 사각형 지구이다. 레오폴드 미술관이 바로 이 MQ 지역에 있다.

그리고 MQ 앞에 있는 두 분홍색 사각형이 빈에서 정말 유명한 박물관인 미술사 & 자연사 박물관이다(이 두 건물은 MQ에 포함되지 않음). 이중 미술사 박물관은 예술사박물관의 중심 건물이자 미술 전시실을 한 건물에 모아둔 곳이다. 예술사박물관은 이번에 간 노이에부르크의 전시실들과 이곳 미술사박물관을 포함하여 총 5개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 중 하나는 빈이 아닌 인스부르크(Innsbruck) 지역에 있다.

이제 주저리 주저리 말은 여기서 끝내고, 페스트 희생자 추모비에서부터 노이에부르크 건물 앞까지 찍었던 풍경들을 또 한번 사진으로 남겨볼까 한다. 옆의 섬네일을 클릭하면 사진을 볼 수 있다. 참고로 저 섬네일 중간에 뒷모습만 나온 두 분이 있는데, 우리 부모님이다 ㅋㅋ 초상권 땜시롱 뒷모습 인증만 살포시 ㅋ

자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보자. 사실 전시실 두 곳이라길래 뭐 엄청나게 오래 있겠나 싶었지만, 오래 있었다. 거의 세 시간 정도 있었는데, 그것도 너무 지쳐서 도저히 더 못있을 것 같아서 나왔다. 뭐 이런 무시무시한 박물관이 다 있냐!

아, 이 박물관은 비엔나 카드 대상이 아니다. 뭐 비엔나 카드가 없었던 나는 크게 상관이 없었지만. (사실 이 박물관 때문에 나는 비엔나 카드가 있으나 마나 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ㅋㅋ) 그리고 이 박물관에선 꼭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길 바란다. 왜냐. 영어설명이 없다 ㅠㅠ 우쒸 나보고 죽으란 말여 ㅠㅠ 진짜 설명이 다 독일어 ㅠㅠ 에페수스에는 가끔 영어가 보이더만 그것도 뭐 ㅠㅠ 난 그냥 팜플렛만 샀을 뿐이고 ㅠㅠ 거기다 나는 오디오 가이드를 원래 안들어서 안빌렸는데, 알고 보니 고음악 전시실에 있는 몇 가지 악기들 소리를 오디오 가이드에서 들을 수 있게 해놓았다 ㅠㅠ 아오 아까비 ㅠㅠ

자 그만 울고. 사실 중세 갑옷과 무기 전시실은 사실 내 취향이 아니다. 거기다 설명이 독일어로 되어 더 내 취향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ㅡㅡ; 그래서 쉬어간단 의미로 생각하고 각 전시실마다 있는 의자에 앉아가며 구경하고 있었는데(여러 방 중 한 곳은 내부수리중인지 못들어가게 해놔서 못갔다), 잘 보니 각 시대별로 갑옷이 좀더 정교해지고 화려해지는 게 보인다! 우오오 역시 내 눈은 이런 걸 그냥 허투루 보지 않는구나! 관심분야가 아니라 그런가 뭔가 엄청 기뻤다 ㅋㅋㅋ 이런 거 좋아할 녀석 한 명 있는데 아마 본인은 누군지 알거다 ㅋㅋㅋ

여튼 그렇게 중세 갑옷과 무기 전시실을 본 뒤 고음악 전시실로 넘어가려고 하는데, 여기서 살짝 미로찾기가 필요하다. 팜플렛에 보면 아주 고대의 악기(피타고라스 악기도 있다!)부터 시대순으로 따라가도록 되어 있는데, 중세 갑옷과 무기 전시실에서 바로 연결되는 방으로 가면 이 곳을 나중에서야 보게 된다. 그래서 공개하는 길찾기 방법! 중세 갑옷과 무기 전시실을 보다 보면 초반에 큰 로비가 나오면서 두 명의 검투사가 말을 타고 싸우는 장면을 만들어놨다. 그 옆에 보면 영어로 '에어컨 틀어놨으니 문 닫아주세염'이라 쓰여져 있는, 복도식의 작은 갤러리가 있다. 이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찌나 복잡하게 만들어 놓으셨는지! ㅡㅡ;

이제 고음악 전시실을 둘러볼 차례! 하지만 말이 고음악(Ancient Music) 전시실이지 사실은 그냥 클래식 음악(Classical Music) 전시실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시대별로 악기를 정렬해놨고, 음악의 도시답게 몇몇 전시실에는 유명 클래식 음악가들에게 헌정하는 방을 만들어 그들의 흉상과 그 시대에 쓰였던 악기들을 함께 전시하고 있었다. 아쉽게도 친필악보 등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건 다른 곳에서 만날 수 있었으니 상관없다.ㅋㅋ

그런데 여기서 또 한번 좀 특별한 일이 있었다. 모차르트 방을 구경하고 있을 즈음, 갑자기 노래소리가 들렸다. 나는 아주아주 순진하게(?) 음악관련 전시실이라 음악을 틀어줬다고 생각했지만, 그건 착각이었다 ㅡㅡ; 알고 보니 바로 옆에 있는 베토벤 전시실에서 누가 마티니(Martinee, 아주 간단한 공연이라고 생각하면 됨)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다. 문 밖으로 들리는 그 소리는 클래식 음악에 이제 막 발을 담근 나에게도 도저히 그냥 지나칠 수가 없게 다가왔었다. 그래서 그 전시실에서 한참을 앉아 음악을 들었다. 빈에서 클래식 공연은 한번도 가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냥 나는 화려한 공연보다 이 순간이 더 좋았다. 대신 이 연습 때문에 베토벤 방에 못들어가서 다시 다른 방을 찾아 온 박물관을 다 헤매고 다녀야 했다는 게 함정이라면 함정 ㅡㅡ;

이제 서서히 체력이 바닥나서 정신줄님하가 끊어지려고 하는데, 여기 박물관 하나 더 있으셈 ㅡㅡ; 에페수스 지역 유물들로 꾸며진 에페수스 박물관이었는데, 이상하게 나는 고대 그리스.로마 시절의 유물에는 별 관심이 없어서 그냥 대강 봤다. 박물관을 여러 군데 다니다 보니 아무리 하나를 집중해서 본다 해도 결국엔 다 잊어버린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사진을 첨부한다. 두 전시실 + 에페수스 박물관에서 찍은 사진들인데, 각 전시실별로 특징이 뚜렷하기 때문에 이 사진은 어느 곳에서 찍었다는 걸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아직 박물관 내부에서 사진찍는 게 익숙하지 않았던 터라 사진이 많지는 않다. 역시 오른쪽 섬네일 클릭!


그렇게 보낸 시간이 약 세 시간. 이제 해는 지평선 너머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인데, 호프부르크를 나가서 슈테판플라츠를 향해 가려는 순간! MQ 내 광장에서 무슨 행사가 있는지 경찰들이 길을 막아놨다! 끄악 ㅡㅡ; 잠깐 방황하다가 일단 다른 우반 역을 향해 걷다보니 U3 노선인 헤렝가세 역이 나온다. 그 순간 슈테판플라츠가 1/3호선 환승역이란 걸 기억해낸 니는 망설임없이 헤렝가세 역으로 내려가 우반을 타고 숙소로 돌아왔다. 우반 역간 거리가 그리 길지 않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유럽에서의 둘째날, 나홀로 여행의 자유로움을 느낀 시간이었다.

Sunday 18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4)

유럽생활 둘째날(1) : 다시 찾은 슈테판 성당 / 성 베드로 성당 / 마차 나들이 / 나홀로 여행의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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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이라고 하기엔 너무 이른 새벽. 시차 때문에 두시에 잠을 깼다. 나는 시차따위 신경안써! 라고 했건만, 전날 일찍 자서 더 그런가, 예상보다 빨리 일어나버려서 깜놀했다. 다행히 속도는 진짜 연결되지 않는 것이 낫다 싶을 정도였지만, 어쨌든 와이파이가 되는 민박집이었길래 내 눈동자와 킬링타임용 넷서핑을 교환하며 시간을 때웠다(부모님 일어나실까봐 불도 못켜고 넥원이 켜고 넷질했다는 말씀 ㅡㅡ;)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드디어 아침이라고 부를 만한 때가 되었을 때, 아버지 회사에서 전화가 한 통 걸려왔고, 이후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났다.

"니 혼자 다닐 수 있제? 우리는 여기 한번 와봤으니까 니가 가고 싶은 데 혼자 다녀봐라."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아니 출국 전에 전화로 살짝 운을 띄우시긴 했지만, 솔직히 첫 해외여행인데 갑자기 혼자 다니라니 ㅡㅡ; 물론 어머니께서도 똑같이 걱정하셨고. 아버지를 말릴 분위기였다. 그때였다. 순간 무슨 객기인지 모르겠지만, 공항에서의 일을 생각해보니 이상하게 그냥 다닐 수 있을 것도 같았다. 거기다 부모님이랑 나랑 여행 스타일이 좀 다른 편이라(나는 한 군데 진득하게 붙어있고 특별히 박물관 덕후라 박물관에서 기본 몇 시간 삐대기 일쑤다) 오히려 잘되었단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혼자 다니기로.

그렇게 나홀로 여행이 결정된 뒤, 우리는 밥을 먹고 다시 우반을 탄 뒤 슈테판 성당으로 향했다. 전날 조명 때문에 제대로 보지 못한 것도 있었기에 낮의 모습을 한번 더 보고 싶었다.

낮에 본 슈테판 성당은 그 겉모습부터 남달랐다. 원래 하얀색이었던 성당이 세월의 때를 입어 까맣게 되어버렸는데, 다시 원래 색으로 돌리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어 밝은 색과 어두운 색을 동시에 볼 수 있었다. 그 크기는 또 얼마나 어마어마한지! 내 똑딱이 디카로 전체 모습을 담기 위해 한 10m 넘게 걸어갔던 것 같다. 그리고 안은 또 얼마나 화려한지! 밤에 비친 색색의 조명이 오히려 이 아름다움을 깎아내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다 문득, 가이드를 따라서 문 안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나도 안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저기 누군가가 옆에 못 들어오게 해놓은 줄을 풀고 아주 태연하게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우린 그래서 당연히 아무나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 그 사람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신나게 돌아다니며 사진도 찍고 구경도 했다. 멀리서 볼 때와 가까이서 볼 때의 그 느낌은 또 어찌나 다른지! 조각의 정교함에 감탄하고, 아름다움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제 빈 여행에서 찍은 슈테판 성당의 사진들을 여기서 함께 나눠보려 한다. 여기서 말하지만, 내가 찍은 사진들은 어떠한 보정도 하지 않은 그대로다. 찍사의 비루한 실력 때문에 사진들이 많이 흔들려서 많은 사진을 보여줄 수 없음에 안타까울 뿐이다. 그러나 그곳에서 느꼈던 감동을 모두 담아낼 수는 없겠지만, 혹여나 약간의 맛보기라도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 사진을 실어놓는다. 사진은 옆의 섬네일을 클릭하면 볼 수 있다.

이제 사진도 대강 찍었겄다, 나가려고 하는데 아주 황당한 일이 일어났다. 그 수많은 사람들은 다 어디 가고 우리와 몇몇 외국인들(우리랑 비슷한 방법으로 들어온 듯하다)만 안쪽에 덩그러니 남아 있는 것이 아닌가! 거기다 출구도 없다 ㅡㅡ; 잠시 정신줄을 놓을 뻔하다 아버지께서 그쪽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한테 출구가 어디인지 물어보셨는데, 그 직원은 오히려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었다.

"Where is your tickets?"
"No ticket!"

너무도 당당하게(?) 아버지께서는 티켓이 없다고 말씀하셨고, 그 직원은 뭐 이런 사람들이 다 있냐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그러다 잠깐 둘러보니 뭔가 출구처럼 보이는 게 있어서 우린 그쪽으로 아무런 죄책감 없이(!) 걸어나왔다.

알고보니 상황은 이랬다. 그 줄을 푼 사람은 이곳 직원이었고, 우리는 멋도 모르고 그 직원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슈테판 성당에 들어가는 건 무료였지만, 내부는 입장료를 내야만 했던 것이다. 우리가 출구라고 생각하고 나온 그 곳은 사실 표를 사서 들어가는 입구였다!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어찌나 쪽팔리면서도 웃기는지! ㅋㅋㅋ 이후로 나는 어디에 들어가든 티켓 부스부터 먼저 찾는 요상한 습관이 생겼다 ㅋㅋㅋ

슈테판 성당을 나와 근처에 있는 또다른 성당인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갔다. 이곳은 슈테판 성당처럼 크진 않았지만, 그 안에 있던 벽화나 조각은 슈테판 성당과는 또 다른, 다소 차분하면서도 경건한 느낌이었다. 하필 우리가 들어갔을 때가 미사 중이라서 바깥에서 구경만 하고 사진을 못 찍었던 게 좀 아쉽다. (미사중에는 외부인들은 안에 못들어가게 막아놓는다. 누가 들어가려고 하니 어느 나이드신 여자분이 오셔서 들어가면 안된다고 바로 그러더라 ㅡㅡ;)

ⓒ syn.sophia
사진을 클릭하면 좀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그렇게 슈테판 성당을 나와 광장으로 나오니 페스트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한 추모비가 있다. 바로 저 추모비인데, 나중에 부다페스트에서도 이와 비슷한 추모비를 만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게 페스트 희생자 추모비라는 걸 전혀 모르고 있었다 ㅋ 뭐 상관없다! 캐른트너 거리만큼이나 이 광장도 지겹도록 다녔으니까! ㅡㅡ; ㅋㅋㅋ

여튼 추모비를 지나 시시 박물관쪽으로 가니 마차가 여러 대 있다. 탈까말까 고민하다 일단 지르고 보자는 물주님 아바마마의 의견에 마차를 탔다. 긴 코스와 짧은 코스가 있는데 긴 코스까지는 필요없을 것 같아 짧은 코스로 출발! 사실 이 근처만 도는 거라 별 기대 안했는데, 오히려 골목 구석구석을 지나가니까 느낌이 새로웠다. 관광지가 아닌, 사람 사는 곳으로의 빈을 느낄 수 있었다고나 할까.

하지만 여기서 나는 난생 처음 무시무시한 괴물을 맞닥뜨리게 된다. 그것은 바로 시.차.괴.물. 으허헝 정오밖에 안됐는데 미친듯이 잠이 쏟아진다 ㅠㅠ(시차 때문에 한국시각으로는 저녁 8시 정도) 그래도 참아야 하느니라! 꿋꿋이 참아내고 겨우겨우 구경을 한 뒤에, 전날 들렀던 그 곳에 가서 닭고기 요리 비슷한 걸 먹었다. (사실 이때 메뉴는 기억이 잘 안나는데, 그 이유는... 잠이 너무 와서 그냥 아무 생각도 없었기 때문이다 ㅠㅠ)

밥을 먹고 나니 이제는 우리가 헤어져야 할 시간! 시시 박물관을 지나 호프부르크 궁(Hofburg, 자세한 내용은 다음 포스트에)로 들어와 안내판을 살펴봤다. 부모님께서는 자연사 & 빈 예술사박물관 중 미술사 박물관을 추천하셨지만, 거긴 내 취향이 아니라 안가겠다고 했다. 사실 저 두 곳은 레오폴드 미술관과 벨베데르 궁과 함께 빈에 온 사람들이 거의 필수적으로 가는 곳이다. 하지만 자연사는 이상하게 내가 과학을 공부했는데도(이래봬도 화학과) 영 안땡기고, 미술사는 아는 게 없어서 들어가도 별 감흥이 없을 것 같았다.

대신 나는 안내판을 보자마자 꽂힌 한 곳의 박물관을 찾아가기로 했다. 바로 빈 예술사박물관의 고음악 관련 전시실! 음악의 도시 빈에 왔으니 음악과 함께 놀아보자는 생각에 내가 생각해도 나다운 곳을 골랐다 싶었다.

그렇게 부모님과 헤어지고, 부모님은 집이 있는 체코 프리덱미스텍으로, 나는 고음악 전시실로 향했다. 드디어 혼자 다니는 빈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Saturday 17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3)

유럽생활 첫째날(3) : 슈테판 성당에 반한 소피아 / 우반에 대해 좀더 알아보자!


* 이 포스트는 웹 버전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의 양해를 구합니다.

사실 첫날 저녁에 뭐 그리 할 게 많겠는가. 그래서 여행보다는 정보를 넣다보니 첫날 여행기가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다.

어쨌거나 지난 포스트에 이어서, 우반을 타고 슈테판플라츠(Stephanplatz)에 내려서 슈테판 성당을 찾아야 하는데, 반대쪽으로 가버려서 어쩌다 그냥 밤거리를 걷게 되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이 거리가 바로 빈의 중심거리인 캐른트너 거리였고, 빈 여행을 하면서 지겨워질 때까지 걷게 된 곳이었다. 왜냐, 의도치 않게 하루에 한 번씩 오게 되었그릉 ㅡㅡ;

그러다 저 멀리서 보이는 슈테판 대성당(Stephansdom)을 보고 다시 캐른트너 거리를 걸어 성당으로 들어갔다. 오 마이 갓. 부모님께서는 러시아 성당에 비하면 이건 새발의 피라고 하며 나의 감동을 확 깎아버렸지만(...참고로 나 이런거 무지 싫어함 ㅡㅡ; 걔네는 걔네고 나는 지금 빈 슈테판 대성당에 있다규!) 멋진 건 멋진 거였다. 미사중이기도 했지만, 미사가 아니더라도 내부에 들어가려면 티켓을 사야 해서 이날은 그냥 바깥에서만 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이 성당의 내부는 그저 환상이었다.

디카를 가져가지 않아서 넥원이로 대강 찍은 사진을 올려둔다. 밤에 이런 조명을 씀으로써 뭔가 신비스러운 느낌을 더하려는 것 같다. 물론 앞으로의 모든 사진들도 그렇겠지만, 이 사진들이 내가 본 것을 모두 다 담아내진 못했다. 디카로 찍은 사진들도 물론 마찬가지다.

사진은 총 네 장. 옆의 조그만 섬네일을 누르면 큰 사진을 볼 수 있다. 단 찍사의 실력이 크게 좋지 않아 사진이 크게 좋진 않으니 감안하고 보시길 ㅡㅡ; (다음 사진을 보려면 사진 오른쪽 윗부분을 클릭하거나 키보드의 N을 누르면 됨. 이전 사진은 사진 왼쪽 윗부분 혹은 키보드의 P를 누르시라)

슈테판 대성당을 나와 밥 먹을 곳을 찾다가 한 식당을 발견했다. 무조건 들어가고 보자는 아버지의 말에 진짜 무조건 들어갔는데, 이 식당이 빈 여행 중 유일하게 '성공한' 식당이 되었다. 그 말인 즉슨, 이곳 말고 다른 곳의 음식은 내가 잘못 골라서 그렇겠지만 진짜 다시는 먹고 싶지 않은 그런 음식이었단 말이다. (두 군데 실패했었는데 그 중 한 곳은 그 여파가 아직도 남아있다 ㅡㅡ; 이 이야기는 나중에..ㅡㅡ;)

여기서 아버지는 슈니첼(빈 지역 음식인데, 손바닥보다 더 큰 돈가스라고 생각하면 됨) 비스무리한 걸로, 어머니는 닭날개 요리로, 나는 배가 별로 안고파서 햄 샌드위치 하나로 배를 채우고 우반을 타고 돌아갔다. 시차와 피곤함 때문에 녹초가 될 지경이었지만, 그래도 첫날 치곤 나쁘지 않았다.

우반을 타고 오는데, 딩동(진짜 종소리같은 딩동) 소리와 함께 안내방송이 들린다. 뭐라뭐라 하는 것 같은데 첫날엔 잘 들리지 않았다. 셋째날 정도 되니까 들리던데, 우리나라처럼 이 역은 무엇이고 여기서 어떤 걸로 갈아탈 수 있으며 다음 출구는 어디다 뭐 이런 식이다. 물론 저걸 다 알아먹어야 하는 건 아니다. 우리에겐 비장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우반 노선도! 이렇게 생겨먹었다 ㅡㅡ;

Wien U-bahn-Netz ⓒ Wikipedia
위의 위키피디아 링크를 클릭하시면 노선도를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새창)
서울지하철 노선도와 뭔가 비슷하면서도 그보단 간결한 것 같고, 그렇다고 아주 간단하게 생긴 아이도 아닌 이 노선도가 바로 빈 시내를 다니는 우반(U-bahn) 노선도다. (2010년 노선도라 지금하고는 좀 다를 수 있음) 이 중 몇몇 역(U1의 칼스플라츠(Karlsplatz)역 등)에는 뭔가 표시가 붙어있는데, 이건 우반 말고 다른 걸로 갈아탈 수 있다는 표시다. 칼스플라츠 역에 붙은 조금 푸르딩딩한 표시는 슈타트반(Stadtbahn) 역이라고 하는데 저건 한번도 안타봐서 모르겠다. 그리고 시머링(Simmering, U3) 역에 붙은 저 표시는 에스반(S-bahn) 환승역인데 저건 우리나라로 따지면 새마을호와 비슷한 느낌이다. 에스반은 나중에 이야기할 일이 또 있기 때문에 여기선 이정도로 줄이고 지나가겠다.

빈의 우반 역이나 우반 내부는 사실 좀 더럽다 ㅡㅡ; 어느 정도냐. 우반 역을 다녀와서 코를 풀어보면 마치 황사 속을 거닌 것처럼 먼지가 뭉쳐서 콧물에 검은 점 여러개가 섞여 나온다. ㅡㅡ; 내가 겪은 가장 심했던 우반 상태는, 로이만플라츠(U1 기점)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케플러플라츠에서 U1 노선 우반을 타는데 누가 먹다 남은 샌드위치를 버려놨던 것 ㅡㅡ; 무려! 한 정거장인데! 이게 뭔일이래 ㅡㅡ;

어쨌거나, 우반 역과 우반 열차를 통틀어 세 가지 특징을 말해보겠다.

첫번째, 우반 역은 양방향간 갈아타는 게 정말 쉽다. 우리나라 다른 지역 지하철은 잘 모르겠는데, 부산 지하철 1호선의 범내골역은 가운데 승강장을 기점으로 서로 다른 방향의 열차를 갈아탈 수 있게 되어 있다. 하지만 모든 역이 다 이렇진 않다. 반면, 빈의 우반 역은 모든 역이 다 이런 식으로 되어 있어 어느 입구로 들어가든 양쪽 중 원하는 방향의 열차를 탈 수 있다.

두번째, 바로 이 안내판이다.

ⓒ syn.sophia
이 사진은 슈테판플라츠 역에서 빈 시민공원(슈타트파크, Stadtpark)로 가기 위해 U1 노선 열차를 타고 한 정거장 와서 칼스플라츠 역에서 내려 U4로 갈아타기 위해 기다리는 중에 찍은 것이다. 이 사진만 보고서 내가 이걸 기억할 수 있었던 건, 지금 내가 어느 역에 있고 여기서 어느 방향의 열차를 탈 수 있으며, 어느 역에서 어떤 열차를 갈아탈 수 있는지를 저 안내판 하나만 보고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나라에도 이런 안내판이 더러 있지만, 매우 작아서 찾기 쉽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반의 이 안내판은 내가 사진을 저렇게 찍어서 그렇지, 우반 열차 창문만하다. 그리고 지금까지 지나온 역들이 회색으로 표시되어 있어 내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를 더 정확하게 볼 수 있다.

세번째. 우반의 문이다.

ⓒ syn.sophia
우반의 문은 이렇게 생겼다. 자, 일단 우리나라 지하철과 비교를 해보자. 문에 손잡이가 있다. 그리고 화살표가 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화살표는 저 방향으로 열린다는 것 같고, 손잡이는 당최 왜 있는겨?'

보통은 여기까지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이 사진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나라 지하철에서는 절대 일어날 수 없는 상황이란 걸 알게 될 것이다.

그렇다. 이 사진 속 우반의 문은 한쪽만 열려있다. 한쪽은 닫힌 상태다.

그럼 이게 어떻게 가능한 것인가? 답은 저 손잡이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반은 자동으로 문이 열리지 않는다. (미리 말하자면, 트램 중에서도 이런 게 있다.) 그래서 타거나 내리는 사람이 직접 문을 열어야 한다. 해당 문 주변에서 타거나 내리는 사람이 없다면 그 문은 열리지 않는다. 나는 우반 문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사람들이 손잡이를 잡고 문을 여는 것을 보고 처음엔 꽤나 당황했었다. 그래서 빈에서 이틀째 되는 날까지는 꼭 현지인이 내리는 곳에서 따라 내리고 타는 곳에서 따라 탔었다.

ⓒ syn.sophia
하지만 문득, 갑자기 객기가 발동하여 요 녀석을 직접 열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 사진이 안쪽에서 찍은 우반 문인데, 움직일 때 찍은 거라 사진 상태가 좀 흐릿하다ㅡㅡ; 여튼 저 화살표에는 독일어와 영어로 '옆으로 미시오(Pull sharply, 독일어는 모르겠음)'라고 되어 있다. 그리하야 밀어보는데 실패 ㅡㅡ; 결국 옆사람을 따라 내려야 했었다 ㅡㅡ;

그리고 또다시 탄 우반. 이번엔 제대로 도전해보리라는 신념으로 내릴 때가 다 되어서 다시 문앞에 섰다. 그리고 저 손잡이를 살짝 누르는 느낌으로 옆으로 밀어주었다.

열렸다.

그리고 나는 문열기에 중독되어 우반이랑 트램을 타게 되면(사실 몇번 타지도 않았지만) 늘 문앞에 대기했다가 내가 내릴 때면 꼭 직접 문을 열었다 ㅋㅋㅋ 이거 장난아니게 재미있음 ㅋㅋㅋ 빈 여행에서 뭔가 소소한 재미를 찾고 싶다면 우반이나 트램 문열기를 추천한다 ㅋ 이거 말고도 내가 아는 종류는 두 개 더 있는데 둘다 버튼식이라 여는 재미는 저 손잡이가 제일 재미있음 ㅋㅋ 아오 또 손이 근질근질거리네 ㅋㅋㅋㅋㅋ 담에 또 빈에 가게 된다면 당당하게 우반 문을 열어주리라(읭?)

여러 가지 자잘한 일들 때문에 여행 포스트가 많이 밀려서 어쩌다 글이 많이 길어졌는데, 이제 트램이랑 에스반 이야기 말고 정보성 포스트는 별로 없으니 폭풍 진도 예정 ㅡㅡ; 나도 여행기 질질 끌긴 싫다 ㅡㅡ; 여튼 유럽생활 첫날 빈에서의 하룻밤 이야기는 여기까지!

Tuesday 6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2)

유럽생활 1일째(2) : 지하철에서 만난 친절한 남자분, 그리고 교통권 이야기


* 본 포스트는 웹 버전에 최적화되어 있습니다. 모바일로 보시는 분들의 양해 바랍니다.

벤츠 택시와 아우디, 폭스바겐을 보며 유럽에 왔음을 실감하고 있는 동안, 우리는 또 하나의 산을 넘어야 했다. 그건 바로 주.차. ㅡㅡ; 내가 혼자 다닐 때야 뭐 주차 신경 안쓰고 다녔지만, 이날 밤도 그렇고 마지막 여행지인 부다페스트에서도 사실 주차 때문에 골치아팠다. 주차장이 많이 없는데다 우리는 짐까지 가득하니(아버지께서 처음에 짐 보시고 진짜 깜놀하셨음. 뭐 이리 많냐면서) 이건 뭐 어쩌겠는가. 다행히 우리가 머물 민박집 근처 공용 주차장에 빈자리가 한 군데 있어서 이때다 하고 바로 주차 성공! 참고로, 혹시나 유럽에 차 끌고 와서 운전하면서 여행하겠다는 분들 있으면 열심히 뜯어말리겠음! 주차하기 정말 힘들다 ㅡㅡ;

빈에서 머물렀던 민박집 이름은 비엔나하우스. 빈 중심가인 캐른트너 거리(캐른트너 슈트라세, Kärntner Straße)에서 우반(U-Bahn, 자세한 설명은 조금 있다가)을 타고 네 정거장 오면 나오는 케플러플라츠(Keplerplatz) 역 근처에 있는 곳이었다. 나름 깨끗하고 밥도 잘 나오는데 딱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면, 아주머니가 가끔 무섭게 느껴진다는 거? 그거 말고는 괜찮았던 것 같다. (오히려 같이 묵고 있었던 목사님이 좀 피곤한 스타일이었다 ㅡㅡ; 아오 그 얘기를 여기서 풀 수도 없고 ㅡㅡ;)

어쨌거나 이제 밥을 먹기 위해 짐을 풀고 밖으로 나왔는데, 아무리 독일어를 읽을 줄 안다해도 여기가 어디이며 뭘 어떻게 가야할지 한번에 안다는 건,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한 것이다. 일단 지하철 역 벽에 있는 지도를 보며 여기가 어디인지 보려는데, 한 남자분이 와서 묻는다.

"Can I help you?"

순간 살았다는 생각과 함께 일단 우리가 어디 있는지를 물어보았고, 그 다음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 분은 여기는 케플러플라츠 역이고, 슈테판 대성당으로 가려면 U1 노선으로 네 정거장을 가서 슈테판플라츠(Stephanplatz) 역에서 내려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그리고 교통권 끊는 방법까지 덤으로 알려준 뒤에 우리와 함께 슈테판플라츠 역까지 같이 가주었다. 우반을 기다리는 동안 나보고 어디서 왔냐고 묻길래 한국 사람이며 아버지께서 체코에 계시기 때문에 아버지를 만나러 왔다고 말해주니까 굉장히 신기한 듯 쳐다보더라. ㅋㅋ 여하튼 나는 맨 처음에 그 분도 슈테판플라츠에 가는가 싶었는데, 우리가 내리는 걸 본 뒤 그 사람은 다시 우반을 타고 자기 갈 길을 갔다. "Enjoy Vienna!" 라는 인사 한 마디와 함께.

여기서 잠깐, 오스트리아의 교통권에 관해 얘기를 해보자. 빈 지하철 역에 가면 무인 판매기에서 아주 쉽게 살 수 있는 이 교통권은 편도, 1일권, 2일권, 3일권, 1주일권 등등 여러 종류가 있다.(참고) 재미있는 건, 기간이 늘어날수록(1일권에서 3일권 뭐 이런 식으로) 가격대비 효용이 높다는 것이다. 나는 빈에 머무는 동안 이 날 끊었던 1일권으로 이틀을 버텼고, 3일권으로 2박 3일 동안 신나게 썼다. 그러니 잘 따져보고 자신에게 맞는 녀석을 사야 돈도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이 교통권 하나로 우리나라 지하철 혹은 전철에 해당하는 우반(U-Bahn)과 우리나라의 국철에 해당하는 에스반(S-Bahn), 지상 전차인 트램(정확한 이름은 Strassenbahn), 버스(Autobus였던 것 같다^^; 타보질 않아서 기억이^^;) 모두를 이용할 수 있다.

@ syn.sophia
왼쪽에 있는 사진이 내가 실제로 썼던 24시간 교통권이다. 이 포스트 올린다고 급하게 찍었던 거라 사진의 질이 시망이라는 점 ㅡㅡ; 뭐 그래요 찍사가 그렇죠 뭐 ㅡㅡ;

여튼 2012년 1월 기준으로 24시간 교통권은 우측 아래에 나와 있는 대로 5.70유로이다.

그 옆에 도장처럼 KE 어쩌구저쩌구라고 찍힌 것이 있는데, 이 표가 몇 시에 펀칭되었는지를 나타낸다. KE는 뭔지 확실히 모르겠는데, 아마 케플러플라츠(Keplerplatz) 역에서 펀칭해서 그런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후회되는 것 하나. 저게 뭔지 확실히 알아보기 위하여 이거 말고 다른 표는 근처에 있는 로이만플라츠(Reumanplatz)에서 펀칭할 걸 그랬다) 그리고 펀칭 표시 옆에 있는 화살표는 펀칭기에 넣을 때 이 방향으로 넣으라는 표시이다.

자, 이제부터 저 교통권을 어떻게 발급받고 어떻게 쓰는지를 살펴보자. 흠흠.

Wikipedia 
교통권 발급 방법은 간단하다. 세 문단 위에 있는 참고 포스트에 보면 살 수 있는 곳이 여러 군데인데, 나는 두번 다 우반 역에서 샀다. 우반 역을 찾는 방법도 간단하다. 주위를 둘러본 뒤에, 오른쪽에 있는 그림과 같은 표시가 있는 곳을 찾으면 거기가 우반 역이다. 역간 거리가 길지 않기 때문에 한 정거장 쯤은 대강 길 알면 찾아갈 수 있으며, 안되면 뭐, 물어보기 신공을 발휘하시라! ㅡㅡ;

아 저 표시 말고도 에스반이나 트램, 버스 등도 표시가 다 있는데, 그건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설명하기로 하고 여기서는 일단 패스 ㅋ

ⓒ syn.sophia
여튼 우반 역에 가면 벽에 무인 발매기가 있는데, 언어를 영어로 선택하고 나오는 대로 누르고 돈 넣으면 바로 발급받을 수 있다. 우리나라의 무인 판매기와 크게 다를 바 없다. 단지, '영어'라는 것 뿐이다. ㅋㅋ

왼쪽에 있는 사진이 바로 무인 판매기이다. 왼쪽의 화면 아무데나 손가락으로 찍으면 메뉴가 나오는데, 거기서 언어를 선택하면 된다. 우리나라의 무인 판매기와 다른 점은, 여기는 '신용카드'가 된다는 것이다. 물론 신용카드로 표를 사본 적은 없다. ㅡㅡ;

자, 이제 표를 샀다! 그럼 이제 타면 되느냐! 그렇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ㅡㅡ;

유럽의 교통권은 발급받았다고 그냥 쓸 수 있는 게 아니다. 반드시 펀칭을 해야 하는데, 이 사람이 언제부터 이 표를 가지고 탔느냐는 걸 증명해주는 역할을 한다. 나는 1일권과 3일권을 썼는데, 위에서 말한 그 분이 말씀해주시길 펀칭을 해야 이 때부터 이 표가 유효한 것이라고 한다.

ⓒ syn.sophia
동유럽의 지하철은 헝가리를 제외하면 지하철 역에서 표 검사를 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잘하면 무임승차도 할 수 있겠지만, 불시에 검사하기 때문에 잘못하다 걸리면 벌금도 내야 하고 쪽팔리기도 하다. 여튼 펀칭을 하지 않은 표는 곧 무임승차와 같은 걸로 보기 때문에 반드시 펀칭을 해야 한다.

요 옆에 있는 사진이 바로 펀칭기이다. 색깔은 역마다 다른데, 저 사진은 마이들링 역에서 열차 기다리다가 생각나서 찍은 것이다. 여튼 저기에 교통권을 집어넣으면 어느 역에서 몇 시에 펀칭했는지 찍혀 있다. 이게 찍힌 시각으로부터 24시간 72시간 이런 식으로 인식되는데, 이 날 저녁 7시에 펀칭을 했기 때문에 다음날 저녁 7시까지 1일권을 쓸 수 있었다. 나는 밤에는 거의 돌아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1일권으로 이틀을 쓴 셈이 되었다. 뭔가 횡재한 기분이었다. ㅋㅋㅋ

설명이 무지막지하게 길어졌는데, 이정도만 알면 빈에서 교통권 가지고 헤맬 일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장담하냐! 내가 이정도만 알고 돌아다녀봤는데 아무 문제 없더라! ㅡㅡv 대신 단 한 가지 기억할 것, 빈 공항에 내려서 쌩쌩 달리는 차들을 보며 아버지께서 해주신 말씀이다.

"유럽의 법은 그 법을 지키는 사람에겐 관대하지만 그 법을 어기는 사람에게는 매우 엄격하다"

Friday 2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1)

유럽생활 1일째(1) : 출국, 그리고 빈 공항(Flughafen Wien)에서의 이야기

드디어 출국날이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아침 9시 55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저 수많은 짐들을 어찌 들고 갈 것인가. 아무리 내가 힘이 넘친다고 해도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이었다. 아니, 무게도 무게지만 캐리어 2개에 좀 큰 가방 하나, 그리고 박스 3개까지. 결국 우리 모녀는 100m도 안되는 길을 중간에 겨우 쉬어가며 택시 타는 곳까지 짐을 전부다 가져간 뒤에 택시 두 대에 나눠서 타고 공항으로 갔다. 택시 하나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공항에 도착한 다음 국제선 수속까지 한번에 마치고 짐을 실었다. 역시, 예상대로 무게 초과였다. 5kg 정도까지는 직원분 재량으로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걸 초과해버려서 결국 무게당 2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12만원 정도를 내고 짐을 비행기에 실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황에서도 캐리어 하나와 내 가방 하나를 들고 타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내에 짐을 싣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튼 9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갔다. 난 당연히 지하철을 타고 갈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버스를 타길 잘한 것 같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은 것도 아니라서 그냥 인천에 빨리 간 뒤에 면세점 돌아보며 뒹굴거리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점심도 제대로 안먹고 가서 좀 배가 고프긴 했지만, 어차피 장장 11시간 정도를 비행기에서 빼도박도 못하고 있어야 하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 생과일주스를 하나씩 사들고 마셨기 때문에(한잔에 7천원인가 6천원인가 그랬다. 겁나 비쌈 ㅠㅠ) 기내식 나오기 전까지는 견딜 만했다.

자, 이제 출국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왜 안내판에 빈이 아니라 취리히라고 뜨는 걸까. 다시 보니까 빈이라고 뜨긴 한다만. 알고보니 이 비행기는 취리히까지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로, 빈을 경유해서 가는 녀석이다. 뭐, 다른 항공사 노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비행기를 타고 빈까지 갔고, 귀국할 때도 이 비행기를 타고 빈에서 취리히, 그리고 취리히에서 인천으로 왔다. 첫 해외여행에 무려 비행기 경유라니! 하고 겁먹었지만, 기내에서 안내방송을 다 해주기 때문에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빈까지 오는 비행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누워서 가도 된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개뿔 ㅡㅡ; 사람 많기만 많더라 ㅡㅡ; 결국 빈에 내리기 전까지 내내 앉아서 가다 보니 온몸은 쑤시고 결리고 난리 ㅡㅡ; 틈틈이 화장실 갔다오고 스트레칭하고, 갖고 온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잠도 자고(한 1시간 정도는 잔 것 같다. 더 자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계속 몇 시간 남았냐고 지겨워 죽겠다고 하면서 시계 좀 보라고 날 깨우셔서 ㅡㅡ;) 주는 기내식 넙죽넙죽 잘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빈 상공을 날고 있었다.

사실 11시간 정도를 비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좀 덜 지겨웠던 건, 국제선 비행기는 USB 포트가 있었으며, 좌석마다 모니터가 있었고, 내장 프로그램으로 게임 몇 가지와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프레스티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꺄오! ㅋㅋ).

대신 조명은 일정 시간이 되면 껐다가 기내식 나올 때나 혹은 착륙 직전에만 켜기 때문에 조명이 필요하면 개인 조명을 켜야 했는데, 이게 은근히 다른 사람 짜증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조명을 계속 켜고 뭘 하던데, 나한테까지 빛이 비쳐서 잠들려고 하는데 잠들지 못하는 그런 시츄에이숑이 벌어진 것이다. 아오 진짜 한마디 할 수도 없고, 그냥 구글 뮤직에서 오프라인용으로 받은 음악들만 죽어라 들으면서 긴 시간을 보냈다.

기내식은, 왜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비빔밥이 나오지 않은 걸까 ㅡㅡ; 한번은 치킨 커리, 또 한번은 쇠고기 스튜를 먹었는데 둘 다 맛있었다. 단지 뜯는 게 너무 힘들어서 고생했을 뿐 ㅡㅡ; (비빔밥은 귀국할 때 결국 먹을 수 있었다 ㅋㅋ) 기내식 종류는 한번에 꼭 두 가지씩 나왔는데, 내국인과 외국인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고기가 들어갔다고 싫어하셨지만, 나는 어차피 당분간 이렇게 먹을 거라 생각하고 적응한다 생각하며 잘 받아먹었다.

자, 이제 바깥으로 빈 상공이 보인다. 아기자기한 집, 아아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유럽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인형의 집같은 아기자기함이 즐비한 그곳으로 들어가는구나! 어찌나 설레던지, 그때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그렇게 나는 빈에 도착했고,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패닉을 경험했으니, 국제공항이라는데, 공항에 영어 표지판이 하나도 없다! 으악 이게 무슨 일이야 ㅡㅡ; 그나마 독일어로 대충 때려맞추고 사람들 따라간 덕분에 여권심사대까지 무리없이 왔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안내판에 독일어와 영어가 함께 나와 있었는데, 독일어를 읽을 줄 알아서 그런가, 뇌가 영어를 인식하지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영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말도 안되지만, 실제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권심사대에서 입국 도장을 찍는데 입구가 두 군데였다. 그냥 아무데나 서도 되나 싶었는데, 한쪽은 EU 국가 국민 전용이었고, 다른 한 쪽은 비EU 국민 전용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비EU 국민 전용 심사대에 줄을 섰다. 이후 도장을 받고 나갈 때, 잊었던 한 마디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Danke Schön. Auf Wiedersehen.(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내 뇌는 아직 이 한 마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빈에 머무는 동안 가게를 들어갈 때마다 써먹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자, 이제 짐을 찾아서 나가면 되는데, 여기서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공항 카트가 무료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다. 미화 50센트나 1유로 동전이 있어야 카트를 끌고 나갈 수 있다. 바깥에서는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데,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들고 나가야 하나. 다행히 환전소가 있어서 안되는 영어로 한국 돈을 유로로 바꾸고 싶다고 했지만, 안된다고 한다. 환전소 목록에도 한국 돈은 없다.

빈으로 여행가려는 이들에게 충고 하나 하자면, 유로는 국내에서 바꿔가야 한다. '현지 공항에서 한국돈을 유로로 바꾸면 되지 않나효?'라고 묻는 이들에게 말한다. 현지 공항 환전소에서 우리나라 돈은 취급 안한다. 내가 허투루 봤을지도 모르지만, 공항뿐만 아니라 내가 본 환전소 중 우리나라 돈을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니 바꿔가라. 최소한의 돈을 바꿔가고 나머지는 카드로 계산하던가, 뭐 그건 당신네들 사정이지만, 빈 공항에서 카트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1유로짜리 동전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다행히 근처에 한국인 가이드인지 주재원인지 아무튼 한국사람이 보여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공항 직원을 불러주었고, 우리는 10유로를 주고 공항 주차장까지 짐을 실어다주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어차피 바깥에 아버지께서 계시니까 10유로를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출구로 나와 아버지와 감격(!)의 상봉을 한 뒤 함께 공항을 막 나오려는데 세관 직원이 우리를 잡는다. 예전에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 세관 직원들이 짐 검사하는 걸 본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가지고 간 짐들 몇 개는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겠다 싶어 비행기 안에서 단어들을 검색해봤는데, 진짜 그 상황이 온 것이다.

먼저 개인 물품인지 회사 물품인지를 물은 뒤, 상자 하나를 열어보라고 했다. 아오, 저거 싼다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지만 세관 직원이 열라고 하니 열어야 한다 ㅡㅡ; 박스를 여니 세관 직원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묻는다. 아는 대로 음식은 음식이라고, 이불은 이불이라고 이야기한다. 음식도 그냥 food라고 하면 안된다. 뭔지 대강이라도 이야기해줘야 한다. 일례로 된장은 'Korean traditional source'라고 했다. 그런데, 세관 직원이 가리키는 걸 보고 난 또다시 패닉.

만두.

이거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나염? ㅡㅡ;

아무리 해도 설명이 안된다. 뭘로 만들었는지 계속 묻는데 답이 안나온다. 그런데 다행히 그게 감자로 만든 만두라서 겉에 potato라고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세관 직원이 Potato?라고 묻길래 맞다고 하고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 아오, 진짜 산 넘어 산이다 완전.

이렇게 험한 과정을 거쳐 우리 가족은 빈 공항(Flughafen Wien)을 빠져나와 드디어 신시가지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환상 하나가 여지없이 깨졌으니,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그림같은 집은 더이상 없었다. 알고 보니 신시가지라서 그런 거였는데, 이 때문에 내가 유럽에 온 건지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유럽에 왔음을 실감하게 된 일이 있었다.

택시가 벤츠다.

나는 택시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벤츠 엠블럼을 보았다. (참고로 그 다음날은 벤츠 트럭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주위엔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무더기로 달리고 있었다.

유럽이다. 여기는 유럽이다. 그림같은 집, 화려한 볼거리들 그 이전에, 나는 차 엠블럼을 보고 내가 유럽에 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누가 자동차 회사 다니던 아버지의 딸 아니랄까봐, 열심히 달리는 차들 속에서 나는 한국을 떠나 드디어 새로운 땅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24일간의 유럽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Thursday 1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Day 0

클래식 음악 듣는 여인네 소피아는 오늘도 아무 생각없이 빨래를 하며 KBS 1FM을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미소를 지었다. 라디오에서는 드보르작의 신세계 교향곡 2악장이 나오고 있었고, 나는 반사적으로 그 곡을 들으며 보았던, 유로시티 차창 너머 체코의 풍경을 생각해냈던 것이다. 그제야 느꼈다. 아, 이제 그동안 귀찮다고 미뤄두었던 이 글을 쓸 시점이 왔구나.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 글은 본격적인 여행기가 아니다. 단지, 동유럽 5개국 6개 도시에 발자국을 남기게 된 사연과, 왜 하필 동유럽인가에 대한 이유, 그리고 가기 전 준비랍시고 했던 좀 이상한 일들을 까먹기 전에 남겨두는 것이다. 본격적인 여행기는 다음 포스트부터 시작될 것이다.


동유럽.

동유럽 여행을 다녀왔다고 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내 예상을 빗나가지 않았다. 부럽다는 반응도 있었지만, 가장 두드러진 반응은 '왜 서유럽이 아닌 동유럽을 택했나'였다. 사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그 중 가장 설명하기 쉬운 것만 둘러댔기 때문에 이 글을 통해 왜 동유럽을 택했는지 말해보려 한다.

기러기 가족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 가족이 바로 그 기러기 가족이다. 아버지는 러시아를 거쳐 지금 체코에서 일하시고, 어머니는 체코와 한국을 왔다갔다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물론 그 전에 아버지께서 러시아에 계실 때에도 한번 나가면 기본 3개월은 계셨기 때문에 가족이 떨어져 지내는 건 이미 익숙해진 데다 매일 오후에 전화가 오기 때문에(체코와 한국의 시차는 8시간, 서머타임때는 7시간. 한국이 당연 빠름) 소식 못들어서 걱정된다 이런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가족이 떨어져 있다는 건 그 가족에겐 굉장히 힘든 일이다.

여하튼 이런 상황 때문에 어머니께서는 올해 초에 체코에 한번 들어가시기로 아버지와 미리 얘기가 되어있었다. 공시생 신분인 나는 5월에 시험을 칠 예정이라 혼자서 집을 지켜야 했는데, 갑자기 12월 시험이 생겼고, 완전 망쳐버린 그 시험에서 예상치 못하게 합격을 하면서 계획이 살짝 바뀌었다. 면접일까지는 두 달 남짓, 그것도 정원내라니. 그 순간 어머니께 살짝 운을 띄웠다. 나도 체코 따라가면 안되냐고. 이후 아버지와 어머니의 몇 차례 통화로 나도 따라가기로 결정되었다. 무려 3주, 정확히 말하면 24일. 그동안 만들어두고 묵혀두었던 여권을 드디어 써먹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후 뒹굴거리며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에 갑자기 아버지께서 제안을 하셨다. 아버지야 주중엔 출근모드니까 나랑 엄마랑 가고 싶은 데 돌아다니라고, 영국 프랑스 독일 핀란드 스위스 등등 가고 싶은 곳을 한번 정해보라고. 그 순간, 나의 특별하고도 특이한 성향이 내 머릿속을 휘감고 지나갔다. 저기 적혀 있는 곳은 사실 여러 사람들이 가는 곳이라 여행기도 넘쳐나고, 항공편도 많지 않겠냐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동유럽은? 내가 아는 한, 동유럽 여행기는 서유럽이나 북유럽에 비해 매우 적었다.

그래서 결정했다. 동유럽에 가자.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만큼, 내가 느낄 수 있는 것들을 더 많이 느낄 수 있지 않겠는가.

자, 이렇게 결심이 섰다. 그렇다면 이제 '내가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생각해야 했다. 그 순간,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안 기상곡(Italian Capricio)>이 뒤통수를 딱 치고 지나갔다. 이탈리아의 분위기를 전혀 몰랐기 때문에 이 곡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경험이 떠올랐던 것이다. 그래, 각 나라의 유명한 작곡가들의 곡을 들으며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는 것. 클래식 음악을 막 듣기 시작한 내게는 이것만큼 클래식 음악과 가까이 할 기회가 또 있겠나 싶었다.

이후 도서관에서 동유럽 관련 책을 빌리고, 인터넷 검색을 하면서 가야 할 곳들을 정했다. 물론 한 나라를 무지막지하게 가기보단 한 도시라도 깊이있게 파고 싶었기에, 한 나라당 도시 하나씩만 짚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각 나라의 수도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래서 빈(오스트리아) - 바르샤바(폴란드) - 프라하(체코) - 브라티슬라바(슬로바키아) - 부다페스트(헝가리)의 5개 도시를 골랐고, 여기에 아버지께서 사시는 체코 프리덱미스텍까지 6개 지역을 유랑하게 되었다.

이제 갈 곳이 정해졌으니 준비를 해야 할 것인데, 사실 준비랍시고 할 게 별로 없었다. 가장 많이들 얘기하는 유레일 패스는 중간에 설 연휴가 겹치는 바람에 도저히 출국 전까지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포기했고, 각종 도시별 카드(프라하 카드, 비엔나 카드 등등)는 몰라서 못했고(나중에 따져보니 나는 이 카드가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더라) 각 나라의 언어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배운 독일어와 영어 이 두 가지로 퉁치자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시 포기했다. 여행경비는 일단 부모님께 손 벌리고 차차 갚겠다고 했으니 역시 땡이고, 최대 3개월 동안 비자없이 다닐 수 있는 지역이라 비자 문제도 해결. 결국 아버지 집에 가져갈 한국음식과 옷들, 기타 짐을 챙기는 일만 남아있었다.

대신 나는 남들이 안하는 두 가지 일을 했다. 하나, 루팅된 내 넥원이에 setcpu 어플을 설치해서 배터리 낭비를 최소화하는 것이었다. 각 나라마다 지도가 있겠지만, 그래도 이 녀석이 언젠가 쓰일 일이 있을 것 같아 해둔 것이다. 둘, 각 나라를 대표할 만한 음악가의 곡을 구글 뮤직과 mp3에 넣어놓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클래식 사이트(http://www.goclassic.co.kr)에 가서 관련 음원 중 내가 알만한 것들을 하나씩 골라 담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곡들을 원하는 장소에서 다 듣진 못했다. 아예 하나도 못 들은 곡도 있다. 하지만, 확실히 넣어가길 잘했다 싶다.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기차 안에서 틈날 때마다 들었기 때문이다.

대강의 준비가 끝나고, 출국 전날 밤까지 어머니랑 둘이서 짐 싸느라 끙끙대다가 잠이 들었던 그 날. 2012년 1월 25일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