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iday 2 March 2012

[여행잡담] 동유럽, 음악 + α - Wien, Republik Österreich(1)

유럽생활 1일째(1) : 출국, 그리고 빈 공항(Flughafen Wien)에서의 이야기

드디어 출국날이다.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는 없다. 아침 9시 55분 비행기를 타야 하는데, 저 수많은 짐들을 어찌 들고 갈 것인가. 아무리 내가 힘이 넘친다고 해도 이건 해도해도 너무하는 것이었다. 아니, 무게도 무게지만 캐리어 2개에 좀 큰 가방 하나, 그리고 박스 3개까지. 결국 우리 모녀는 100m도 안되는 길을 중간에 겨우 쉬어가며 택시 타는 곳까지 짐을 전부다 가져간 뒤에 택시 두 대에 나눠서 타고 공항으로 갔다. 택시 하나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공항에 도착한 다음 국제선 수속까지 한번에 마치고 짐을 실었다. 역시, 예상대로 무게 초과였다. 5kg 정도까지는 직원분 재량으로 해줄 수 있다고 했지만, 그걸 초과해버려서 결국 무게당 2만원이 조금 넘는 금액으로, 12만원 정도를 내고 짐을 비행기에 실어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상황에서도 캐리어 하나와 내 가방 하나를 들고 타야 했기 때문에 더 이상 기내에 짐을 싣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튼 9시 20분 비행기를 타고 김포에 내려서 버스를 타고 다시 인천공항으로 갔다. 난 당연히 지하철을 타고 갈 거라 생각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버스를 타길 잘한 것 같다. 시간이 아주 많이 남은 것도 아니라서 그냥 인천에 빨리 간 뒤에 면세점 돌아보며 뒹굴거리는 게 나았기 때문이다. 뭐, 사실 점심도 제대로 안먹고 가서 좀 배가 고프긴 했지만, 어차피 장장 11시간 정도를 비행기에서 빼도박도 못하고 있어야 하니까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리고 비행기 타기 전 생과일주스를 하나씩 사들고 마셨기 때문에(한잔에 7천원인가 6천원인가 그랬다. 겁나 비쌈 ㅠㅠ) 기내식 나오기 전까지는 견딜 만했다.

자, 이제 출국이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왜 안내판에 빈이 아니라 취리히라고 뜨는 걸까. 다시 보니까 빈이라고 뜨긴 한다만. 알고보니 이 비행기는 취리히까지 가는 대한항공 비행기로, 빈을 경유해서 가는 녀석이다. 뭐, 다른 항공사 노선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나는 이 비행기를 타고 빈까지 갔고, 귀국할 때도 이 비행기를 타고 빈에서 취리히, 그리고 취리히에서 인천으로 왔다. 첫 해외여행에 무려 비행기 경유라니! 하고 겁먹었지만, 기내에서 안내방송을 다 해주기 때문에 절대 겁먹을 필요가 없었다.

'빈까지 오는 비행기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누워서 가도 된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하.지.만. 개뿔 ㅡㅡ; 사람 많기만 많더라 ㅡㅡ; 결국 빈에 내리기 전까지 내내 앉아서 가다 보니 온몸은 쑤시고 결리고 난리 ㅡㅡ; 틈틈이 화장실 갔다오고 스트레칭하고, 갖고 온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듣고 잠도 자고(한 1시간 정도는 잔 것 같다. 더 자고 싶었는데 어머니께서 계속 몇 시간 남았냐고 지겨워 죽겠다고 하면서 시계 좀 보라고 날 깨우셔서 ㅡㅡ;) 주는 기내식 넙죽넙죽 잘 받아먹다 보니 어느새 빈 상공을 날고 있었다.

사실 11시간 정도를 비행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내 생각보다 좀 덜 지겨웠던 건, 국제선 비행기는 USB 포트가 있었으며, 좌석마다 모니터가 있었고, 내장 프로그램으로 게임 몇 가지와 음악, 드라마, 영화 등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프레스티지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꺄오! ㅋㅋ).

대신 조명은 일정 시간이 되면 껐다가 기내식 나올 때나 혹은 착륙 직전에만 켜기 때문에 조명이 필요하면 개인 조명을 켜야 했는데, 이게 은근히 다른 사람 짜증나게 하는 효과가 있다. 내 뒷좌석에 앉은 사람이 조명을 계속 켜고 뭘 하던데, 나한테까지 빛이 비쳐서 잠들려고 하는데 잠들지 못하는 그런 시츄에이숑이 벌어진 것이다. 아오 진짜 한마디 할 수도 없고, 그냥 구글 뮤직에서 오프라인용으로 받은 음악들만 죽어라 들으면서 긴 시간을 보냈다.

기내식은, 왜 내가 그토록 바라마지않는 비빔밥이 나오지 않은 걸까 ㅡㅡ; 한번은 치킨 커리, 또 한번은 쇠고기 스튜를 먹었는데 둘 다 맛있었다. 단지 뜯는 게 너무 힘들어서 고생했을 뿐 ㅡㅡ; (비빔밥은 귀국할 때 결국 먹을 수 있었다 ㅋㅋ) 기내식 종류는 한번에 꼭 두 가지씩 나왔는데, 내국인과 외국인을 생각해서 그런 것 같았다. 어머니께서는 고기가 들어갔다고 싫어하셨지만, 나는 어차피 당분간 이렇게 먹을 거라 생각하고 적응한다 생각하며 잘 받아먹었다.

자, 이제 바깥으로 빈 상공이 보인다. 아기자기한 집, 아아 이것이 바로 내가 꿈꾸던 바로 그 유럽의 모습이었다! 드디어 인형의 집같은 아기자기함이 즐비한 그곳으로 들어가는구나! 어찌나 설레던지, 그때 그 기분을 어떻게 표현하겠는가.

그렇게 나는 빈에 도착했고,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된다.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패닉을 경험했으니, 국제공항이라는데, 공항에 영어 표지판이 하나도 없다! 으악 이게 무슨 일이야 ㅡㅡ; 그나마 독일어로 대충 때려맞추고 사람들 따라간 덕분에 여권심사대까지 무리없이 왔는데, 알고보니 그게 아니었다. 안내판에 독일어와 영어가 함께 나와 있었는데, 독일어를 읽을 줄 알아서 그런가, 뇌가 영어를 인식하지 않았는지 순간적으로 영어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말도 안되지만, 실제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권심사대에서 입국 도장을 찍는데 입구가 두 군데였다. 그냥 아무데나 서도 되나 싶었는데, 한쪽은 EU 국가 국민 전용이었고, 다른 한 쪽은 비EU 국민 전용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함께 비EU 국민 전용 심사대에 줄을 섰다. 이후 도장을 받고 나갈 때, 잊었던 한 마디가 입에서 튀어나왔다.

"Danke Schön. Auf Wiedersehen.(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세요)"

내 뇌는 아직 이 한 마디를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말은 빈에 머무는 동안 가게를 들어갈 때마다 써먹는 단골 메뉴가 되었다.

자, 이제 짐을 찾아서 나가면 되는데, 여기서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우리나라는 공항 카트가 무료다. 하지만 여기는 아니다. 미화 50센트나 1유로 동전이 있어야 카트를 끌고 나갈 수 있다. 바깥에서는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데, 이 많은 짐을 어떻게 들고 나가야 하나. 다행히 환전소가 있어서 안되는 영어로 한국 돈을 유로로 바꾸고 싶다고 했지만, 안된다고 한다. 환전소 목록에도 한국 돈은 없다.

빈으로 여행가려는 이들에게 충고 하나 하자면, 유로는 국내에서 바꿔가야 한다. '현지 공항에서 한국돈을 유로로 바꾸면 되지 않나효?'라고 묻는 이들에게 말한다. 현지 공항 환전소에서 우리나라 돈은 취급 안한다. 내가 허투루 봤을지도 모르지만, 공항뿐만 아니라 내가 본 환전소 중 우리나라 돈을 취급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니 바꿔가라. 최소한의 돈을 바꿔가고 나머지는 카드로 계산하던가, 뭐 그건 당신네들 사정이지만, 빈 공항에서 카트를 사용하려면 적어도 1유로짜리 동전 하나는 꼭 있어야 한다.

난감해하고 있는데 다행히 근처에 한국인 가이드인지 주재원인지 아무튼 한국사람이 보여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공항 직원을 불러주었고, 우리는 10유로를 주고 공항 주차장까지 짐을 실어다주는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었다. 어차피 바깥에 아버지께서 계시니까 10유로를 내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출구로 나와 아버지와 감격(!)의 상봉을 한 뒤 함께 공항을 막 나오려는데 세관 직원이 우리를 잡는다. 예전에 '좋은나라 운동본부'에서 세관 직원들이 짐 검사하는 걸 본 적이 있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가 가지고 간 짐들 몇 개는 영어로 말할 수 있어야겠다 싶어 비행기 안에서 단어들을 검색해봤는데, 진짜 그 상황이 온 것이다.

먼저 개인 물품인지 회사 물품인지를 물은 뒤, 상자 하나를 열어보라고 했다. 아오, 저거 싼다고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는데!! 하지만 세관 직원이 열라고 하니 열어야 한다 ㅡㅡ; 박스를 여니 세관 직원이 하나하나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묻는다. 아는 대로 음식은 음식이라고, 이불은 이불이라고 이야기한다. 음식도 그냥 food라고 하면 안된다. 뭔지 대강이라도 이야기해줘야 한다. 일례로 된장은 'Korean traditional source'라고 했다. 그런데, 세관 직원이 가리키는 걸 보고 난 또다시 패닉.

만두.

이거 영어로 어떻게 설명하나염? ㅡㅡ;

아무리 해도 설명이 안된다. 뭘로 만들었는지 계속 묻는데 답이 안나온다. 그런데 다행히 그게 감자로 만든 만두라서 겉에 potato라고 되어 있었다. 그걸 보고 세관 직원이 Potato?라고 묻길래 맞다고 하고 겨우 넘어갈 수 있었다. 아오, 진짜 산 넘어 산이다 완전.

이렇게 험한 과정을 거쳐 우리 가족은 빈 공항(Flughafen Wien)을 빠져나와 드디어 신시가지를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여기서 나의 환상 하나가 여지없이 깨졌으니, 비행기 안에서 보았던 그림같은 집은 더이상 없었다. 알고 보니 신시가지라서 그런 거였는데, 이 때문에 내가 유럽에 온 건지 도저히 실감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순간 내가 유럽에 왔음을 실감하게 된 일이 있었다.

택시가 벤츠다.

나는 택시에 선명하게 박혀 있는 벤츠 엠블럼을 보았다. (참고로 그 다음날은 벤츠 트럭을 보았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내 주위엔 아우디와 폭스바겐이 무더기로 달리고 있었다.

유럽이다. 여기는 유럽이다. 그림같은 집, 화려한 볼거리들 그 이전에, 나는 차 엠블럼을 보고 내가 유럽에 왔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누가 자동차 회사 다니던 아버지의 딸 아니랄까봐, 열심히 달리는 차들 속에서 나는 한국을 떠나 드디어 새로운 땅에 왔음을 알게 되었다.

24일간의 유럽 생활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1 comment:

  1. ㅎㅎ 재밌네여 저두 제2외국어가 독어긴한데..아우프 비더세헨 말곤 딱히 기억이..^^;

    3년전 윈난성 호도협을 오를때 독일인 삼촌과 조카일행이랑 동반 트랙킹을 함서 몇마디 걸어보려했으나 머릿속은 안들호 ㅎ 오직 기억나는건 구텐 모르겐,구텐 탁,구텐 아벤트밖에..ㅎㅎ(주입식교육의 병폐라니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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