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3 May 2012

[영화잡담] 인크레더블 헐크(Incredible Hulk, 2008)

ⓒ Marble Studio
헐크.

어렸을 적에 만화인지 영화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TV에서였나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한번 봐서 이미 익숙해진 그 이름. 그래서일까, 사실 이 영화가 어떤 느낌일진 대강 예상하고 있었다. 헐크가 변하는 과정을 보여줄 것이고, 지킬박사와 하이드처럼 변한 자신의 모습을 괴로워하는 장면도 있을 것이고. 어쨌거나 수퍼히어로 시리즈인 어벤저스 프로젝트의 일부이니 영웅 헐크를 띄워주는 내용도 있을 것이고.

여튼 결론부터 말하자면, 별로였다.

<아이언 맨>을 본 뒤 이 영화를 봤기 때문에, 같은 마블 스튜디오의 작품이라면 어느 정도 스토리도 괜찮고 뭔가 남는 게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같은 이야기라도 잘 풀어나가면 괜찮은 영화가 될 거란 기대도 했었다. (어벤저스 프로젝트에 포함된 영화는 아니지만, 2005년작 <오만과 편견>도 어떻게 보면 신데렐라 컴플렉스 + 가난한 여주인공이 부자 남자주인공을 만나는 아주 단순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 둘의 감정선이라던가 여러 주변 이야기들을 잘 끼워넣어 멋진 작품을 만들어냈다고 본다.)

그러나 이 영화는 기존의 틀에 박힌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똑같은 두 헐크가 선과 악으로 대립하는 모습은 전작 <아이언 맨>에서 토니와 오베디아가 각자의 수트를 입고 대결하는 모습에서 캐릭터만 바뀐 것이었고, 헐크로 변한 주인공의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여주인공은 너무 뻔한 소재였다. 여기에 승리에 대한 욕심으로 수퍼솔저 프로젝트를 진행시킨 로스 장군이나 더 나은 전투력을 위해 자신의 몸에 무리한 실험을 가한 블론스키의 캐릭터도 그렇게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인다.

또한 영화 내부에서 동일한 이야기가 반복되면서 영화가 늘어지는 느낌도 든다. 실험 후 미국에서 도망친 브루스 배너가 숨어 산다 - Mr. 블루와 연락한다 - 숨어 살다 미군에게 들킨다 - 쫓기다 헐크로 변한다 - 난폭하게 행동한뒤 다시 원점. 사이사이에 블론스키의 등장이나 베티 로스와의 동행이 나오지만 이 두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야기 구조를 환기시킬 만큼 힘이 있어보이진 않았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영화를 다 보고서도 주인공에 대한 인상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가장 반가웠던 캐릭터는 마지막에 로스 장군에게 팀을 만들 것을 권유하는 토니 스타크였다. 영웅물이면 보통 선한 역할을 하는 주인공이 부각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달랐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없애고 싶어하는, 이른바 '고뇌하는 주인공'을 보여주길 원했다면 그 목적은 충분히 달성한 듯하다. 하지만 그만큼 주인공이 가지는 힘이 빠져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거기다 마지막엔 자기 힘을 없애기보다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그런 주인공이라니 뭔가 앞뒤가 안맞는다는 느낌도 들고. (그렇게 자기 힘을 없애고 싶다고 막 그러면서! 마지막에 급변할 만한 모티브가 잘 안보였다.)

이제 <어벤저스> 전작 중 두 편을 봤다. 그 중 이 영화가 제일 별로일지 아니면 다른 영화가 가장 별로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영화에 나오는 헐크가 <어벤저스>에서는 어떻게 그려질 것인지 기대가 되기도 한다. 과연, 자신의 힘을 즐기는 헐크는 어떤 모습일까. 그건 영화를 보면 알 수 있겠지. 제발 내가 극장 가기 전까지 이 영화가 내려가지 않기를! ㅠㅠ

* 이 글을 다 쓰고 나서 구글에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들을 조금 찾아서 훑어봤는데, 다들 괜찮다는 반응이 주류였다 ㅡㅡ; 내가 좀 이상한가 ㅡㅡ; 뭐 어때, 세상엔 나같은 사람도 있어야해(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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