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6 October 2011

[영화잡담]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지금까지 총 몇 편의 영화를 봤는진 사실 모른다. 하지만, 그중에서 10여년이 지나도 내용을 거의 완벽하게 기억하는 영화는 이 작품 하나 뿐이다.

<타임 투 킬(A Time to Kill, 1996)>. 소설가 존 그리샴이 쓴 동명의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 하지만 난 원작을 읽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작이 어땠는진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영화 자체로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내겐 충격이랄까. 그런 게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까지 기억하는 걸 보면.

일단 영화의 큰 줄기는 다음과 같다.

인종차별이 여전한 미국 미시시피주 켄튼 지역에서 흑인 소녀 토냐가 백인 청년 두 명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거의 죽을 뻔한 사건이 일어난다. 범인은 잡히고 재판을 기다리는 상황. 하지만 이미 비슷한 사건에서 무죄판결이 난 적이 있는 걸 알고 있는 토냐의 아버지 칼 리 헤일리(사무엘 잭슨 분)는 재판 전날 법정에 몰래 숨어 들어가고, 다음날 재판장으로 들어가는 두 범인을 총으로 쏘아 죽인다. 이 일로 칼 리는 감옥에 갇히게 되고, 그는 자신의 친구이자 자신의 동생을 변호했던 백인 변호사 제이크 브리갠스(매튜 맥커너히 분)에게 자신의 변호를 부탁한다.

이후 제이크는 미시시피 법대에 다니는 엘렌 로아크(산드라 블록 분)와 자신의 스승 루션(도널드 서덜랜드 분)의 도움을 받아 칼 리의 변호를 준비한다. 그러나 흑인을 변호하는 백인 변호사라는 게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수년 동안 잠잠했던 KKK단의 공격을 받아 자신의 집이 불탄 것은 물론, 주위 사람들도 협박과 폭행에 시달린다. 하지만 그는 사건을 포기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칼 리의 변호를 맡아 무죄판결을 이끌어낸다.

줄거리만 보면 전형적인 법정 영화에다 인종차별의 코드를 집어넣은 영화다. 10여년 전에 내가 느꼈던 것도 딱 여기까지였다. 하지만 오늘 이 영화를 다시 보니 내가 놓친 것이 보였다. 그건 바로 '사람의 이중성'이었다.

일단 주인공 제이크를 보자. 그는 흑인과 백인은 평등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도 칼 리를 '친구'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최종 재판 바로 직전 새벽에 칼 리는 제이크의 그런 모습이 위선이었음을 말해준다. 자신을 친구라고 말하는 제이크에게 '당신은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아. 당신은 내가 어디 사는지 모르지. 우리 아이들은 함께 놀 수가 없어.'라고 말하면서.

에이지 목사도 마찬가지였다. NACCP에서 처음 기금 이야기를 할 때는 기금을 모으기 힘들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수고비를 주겠다는 말에 반색을 하며 기금을 모은다. 그것도 거짓말을 해서. 이것 역시 칼 리가 부인을 통해서 이야기를 들은 바였고, 그는 자신이 들은 것을 에이지 목사에게 그대로 말한다. '기금을 모으실 때 제 변호기금이 아니라 제 가족들이 굶어 죽을 상황이라 돈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다고 들었다'라는 한 마디로.

NAACP는 어떤가. 그들은 칼 리를 이용해서 자신들의 명성을 높이려 했다. 그래서 칼 리에게 제이크 대신 자신들의 변호인단을 선택하라고 했다. 기금도 이미 다 모은 상태였다. 하지만 칼 리는 거절했다. 대신 제이크를 선택했다. 나중에서야 나오지만 그 이유는 제이크가 백인이기 때문에 백인의 입장에서 자신을 변호해 줄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칼 리를 돕겠다는 이들이 칼 리를 통해 자신의 잘못된 모습을 보게 된다.  그리고 영화는 NAACP를 제외한 두 사람의 변화도 보여준다(NAACP 관계자는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 에이지 목사는 법정 앞에서 흑인들과 함께 칼 리의 무죄를 주장하고(물론 이것을 변화라고 보는 건 비약일 수도 있다), 제이크는 당연히 패소한다고 생각한 평결을 최후 변론으로 뒤집은 뒤, 칼 리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자신의 가족을 데리고 간다.

그리고 이 영화는 나에게 묻는다. 사회정책분야에 관심이 많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살고 싶다고 하는데, 나는 그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하지만 난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칼 리의 그 눈빛, 제이크와 에이지 목사를 보며 그들의 잘못된 모습을 비판하는 그 눈빛 앞에 나는 당당하지 못했다. 나도 결국은 그들과 같이 이중적이며 모순덩어리일 뿐이었으니까. 나도 결국은 그들을 나의 잣대로 마음대로 판단하고 비난하는 부류일 뿐이니까.

그래서, 이 영화가 너무 고맙다. 그리고 나 역시 제이크와 에이지 목사처럼, 칼 리의 그 눈빛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 물론 내 안의 모순을 깨는 게 쉽지 않은 걸 알기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말은 못하겠지만.



* 이 영화를 보면서 또 발견한 게 있는데, 내용과는 관련없는 부분이라 이렇게 따로 쓴다.

하나. 서덜랜드 부자가 이 영화에 함께 출연했다. 그런데 같은 편이 아니다. 아버지인 도널드 서덜랜드(Donald Sutherland)는 제이크의 스승인 루션 역으로, 아들인 키퍼 서덜랜드(Kiefer Sutherland)는 성폭행범의 동생이자 KKK단의 일원인 프레디 역으로 나왔다. 닮은 사람 두 명이 서로 다른 편을 연기하는 걸 보니 좀 이상했다. ㅋㅋ

둘. 이 영화에서 제이크 역을 맡은 매튜 맥커너히(Matthew McConaughey)는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도 변호사 역을 맡았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타임 투 킬>에서는 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이었던 반면, <링컨 차를 타는 변호사>에서는 속물의 성향이 강했다는 것이다. 두 영화를 비교해서 보는 것도 나름의 재미일 듯하다.

셋. 이 영화에 이렇게 유명한 사람들이 떼로 나올 줄이야. 위의 세 명과 함께, 산드라 블록(Sandra Bullock), 사무엘 잭슨(Samuel Jackson), 케빈 스페이시(Kevin Spacey)까지. 오프닝에 나오는 배우들 이름을 보면서 내 눈을 의심했다. O_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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