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nday 15 January 2012

[음악잡담] Wagner - Tannhäuser Overture

어릴 때 부모님을 졸라 피아노를 6년 정도 배웠다. 그 때는 정말 치기 싫었는데, 지금은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마다 피아노 뚜껑을 열어 아무 악보나 골라서 치곤 한다. 그런데 얼마 전, 어렸을 때는 전혀 알지 못했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연주자의 재량(기량이 아닌, 재량으로 해결한다고 할 때의 그 '재량')과 악보 해석능력. 단순히 악보를 보고 연주하는 것 이상으로 자신의 느낌과 감정을 싣는 게 중요하다는 것. 그리고,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곡의 느낌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

이 사실을 차이코프스키의 <1812년 서곡>을 들으며 다시 느낄 수 있었다. 당시 나는 세 개의 음원을 가지고 있었는데, 분명 같은 곡인데도 대포 사용 유무에 따라, 대포가 어느 박자에 터지느냐에 따라, 각 주제의 빠르기에 따라 곡의 느낌이 조금씩 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명 같은 악보인데 말이다.

2012년 1월 둘째주에 들었던 곡은, 꽤나 유명한 곡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들어보지 못한,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Tannhäuser Overture)>이었다. 의도하지 않게 이번주는 각각 다른 지휘자 + 오케스트라의 녹음 두 개를 함께 듣게 되었고, 위에서 느꼈던 '해석'의 차이를 확연히 느낄 수 있었다. 그건 차차 이야기하기로 하고...

저번주에 들었던, 차이코프스키의 <이탈리안 기상곡> 이후 나는 행복한 고민에 빠졌다. 차이코프스키를 계속 달릴 것인가, 아니면 다른 작곡가로 갈아탈 것인가. 다른 작곡가로 갈아탄다면, 1958년 음반에서 <1812 서곡>과 <이탈리안 기상곡>에 커플링되어 있던, 베토벤의 <웰링턴의 승리>를 선택할 것인가. 정말 고민을 많이 하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른 이름이 있었으니, 바로 바그너(Wagner)였다. 조금 옆길로 새자면, 내가 요즘 파고 있는 배우이자 나의 롤모델인 스티븐 프라이(Stephen Fry)가 바그너 팬이다. 물론 절.대.로. 이 사실 때문에 이 곡을 고른 건 아니다. 단지 짧아서 ㅡㅡ; 긴 곡을 듣기엔 좀 부담스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ㅡㅡ;

여튼 바그너의 <탄호이저 서곡> 관련 글들을 또 검색해보니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의 지휘반을 다들 추천하길래 고클래식 다운로드에서 다운받아 구글뮤직에 업로드했다(이하 1960년반). 그리고 곡명 정리를 위해 Wagner로 검색을 하는데, <탄호이저 서곡> 파일이 두 개 있다고 나오는 것이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 싶었는데, 아차차. 이전에 고클래식의 베이직 클래식 메뉴에서 빌렘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의 1930년 지휘반(이하 1930년반)을 다운받았던 게 생각났다. 이런. 피아노로 편곡된 악보를 봐도 무슨 곡인지 전혀 모르겠던데, 아마 관심있게 듣지 않았던 모양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주는 같은 곡을 어떻게 해석했는지 두 음원을 비교해가며 들었다. 그리고 3일만에 둘 중 하나의 음원을 선택할 수 있었다.

ⓒ EMI / 이미지 출처 : 고클래식 웹진
빌렘 멩겔베르크(Willem Mengelberg, 지휘)
암스테르담 콘서트해보우 오케스트라
(Amsterdam Concertgebouw Orchestra)
1930 Mono
우선 두 음반은 연주 시간에서 1분 정도의 차이를 보였다. 1930년반이 1분 정도 더 짧았는데, 1960년반이 박수를 좀 더 받느라고 1분 정도 시간을 썼다 싶은, 지금 생각해보면 조금 황당한 생각을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두 음반의 차이는 바로 이 1분에 있었다.

이 곡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참고 : 고클래식 웹진 - 탄호이저 서곡) 예전에 <세상이 묻고 진리가 답하다>라는 책에서 백비 아즈씨가 안식 - 해방 - 안식이었나? 아무튼 무슨 구조를 말한 게 있는데, 이 곡이 딱 그렇다. (물론 나는 서양음악에만 그 구조가 있다는 백비 아즈씨의 말에 동의할 수 없다. 그때 지간사님 말씀에 엉뚱한 답을 하긴 했는데, 사실 내가 동의 못하는 부분은 A-B-A 구조 이외의 다른 구조로 안식 - 해방 - 안식의 구도를 그릴 수 있다는 가정이 붙어있다면, 동양음악 역시 그 구도를 가지고 있다고 충분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EMI / 이미지 출처 : 고클래식 다운로드
오토 클렘페러(Otto Klemperer, 지휘)
필하모니아 오케스트라
(Philharmonia Orchestra)
1960 Stereo
그런데 첫번째 부분에서 두번째 부분으로 넘어가는 부분이 굉장히 급격하다. 그래서 처음 들었을 때 혹시나 음반이 튕겨서 1분 정도 짧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리스트가 편곡한 피아노 악보를 보니 원래 그런 거였다.

대신 1960년반은 첫번째 부분과 세번째 부분을 1930년반보다 느리게 연주한다. 그만큼 두번째 부분은 훨씬 급격하게 넘어가고, 확 바뀐다는 느낌을 더 강하게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부분에서 세번째 부분으로 넘어갈 때는 더욱 웅장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자, 이제 눈치를 챘을 것이다. 내가 1960년반을 선택했음을.

분명 두 사람은 같은 악보를 보고 연주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떻게 1분이라는 차이가 날 수 있었을까. 나는 지휘자인 빌렘 멤겔베르크와 오토 클렘페러가 각각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그 악보를 다르게 '해석'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휘자의 재량. 같은 곡을 연주해도 조금씩 다른 느낌을 가져다주는 것. 편곡을 하지 않아도, 곡을 어떻게 해석했느냐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받는 것. 이번 1주일 동안 <탄호이저 서곡>을 들으며 느꼈던 것이다.

지금은 아는 곡들이 별로 없어 일단 여러 곡들을 귀에 익히는 중이지만, 이제 어느 정도 곡들이 귀에 익으면 같은 곡을 각 지휘자별로 들어보고 싶다. 지휘자들의 곡 해석 묘미를,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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